능선따라 걷는 길

치악산 남대봉(南臺峰;1,181m)을 오르며 국운(國運)을 생각하다.

미지부동산 2014. 10. 1. 13:49

치악산 남대봉(南臺峰;1,181m)을 오르며 국운(國運)을 생각하다.

 

(2014.9.28.일. 분당; 흐림, 치악산; 맑으나 청명하지 못함)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있는 영원산성. 해미산성. 금대산성과 같은 유적지(遺蹟地)는 우리의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역사의 현장이었던 곳 중의 하나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난날 있었던 하나의 산성 터로, 표지 안내문에 써진 내용대로 예전에 이런 역사의 흔적이 있었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표지 안내문을 보는 순간 잊어버릴 것이다.

이런 역사의 현장에서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이 강토를 지키지 않았다면 현재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특히 영원산성은 통일신라 말기의 어수선했던 시절의 도적의 소굴이었던 곳이 크게 성장 발전하여 지방의 세력가로 성장한 북원의 양길(梁吉)에게 궁예(弓裔)가 뜻을 같이 하면서, 궁예(弓裔)는 힘을 길러 나중에는 후고구려란 나라를 세웠다가 국명을 태봉으로 바꾸었으나 궁예(弓裔) 자신의 실정(失政)으로,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넘겨주므로 사실상 고려가 하나의 국가로 성장하게 하였던 곳이 바로 남대봉 밑의 영원산성인 것이다.

또한, 이 영원산성은 시대를 달리하여 고려 충렬왕17년(1291년)경에 원(元)나라 세조(世祖)에 반기(叛起)를 든 원(元)나라 부장(部將) 출신 합단(哈丹)이 말머리를 고려로 돌려 침입하자, 고려 조종은 왕실을 강화도로 옮기는 등 국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한반도 중원의 거점 전략지역인 이곳 남대봉 아래의 영원산성을 공략하지 않고서는 남쪽으로 진격할 수 없었다. 원나라에 반기든 세력인 합단(哈丹)이 10여 차례 공략하였으나, 이 지역 일개 향공진사(鄕貢進士) 출신인 원충갑(元冲甲)이 지역의 군. 관. 민들과 합세하여 합단(哈丹)의 도적무리를 공략하여 10전 전승의 전과를 올리며 적을 패퇴시키므로 고려(高麗)를 구하였던 것이다. 이 전쟁의 승리에 대해 고려조정은 이 곳 주민의 노고를 치하하는 뜻으로 3년간 부역과 세곡을 면제 해 주었으며, 원주를 익흥도호부로 승격하였다.

 

 

현재는 원주문화원에서는 매년 음력 1월 21일 기해 민. 관. 군 합동으로 영원산성 대첩을 거행하고 있다. 영원산성이 본성(本城)으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외성(外城)에 해당하는 해미산성과 금대산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월의 부침 속에 조선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수도인 한양(漢陽)을 지키기 위해 이 곳 원주관내 민. 관. 군이 힘을 합쳐 목사(牧使) 김제갑(金悌甲)의 지휘아래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끝까지 항전하다가 모두들 장렬히 순국(殉國)하였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이 영원산성에는 오래 동안 국가의 중요진지의 역할을 해 왔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옛 산성의 영화는 간데없고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는 산성터로 남게 되었다.

치악산은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산맥의 줄기로서 영서지방의 명산이며, 원주의 진산으로 남북으로 웅장한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주봉인 비로봉(毘盧峰:1,288m)을 중심으로 향로봉(香爐峰:1,043m), 남대봉(南臺峰:1,181m)과 북쪽으로 매화산(梅花山:1,084m), 삼봉(三峰:1,073m) 등 남북으로 천 미터 이상의 고봉으로 14km나 뻗은 능선으로 연결 되며, 그 사이로 깊은 계곡을 끼고 있다. 또한 능선을 경계로 하여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은 완경사다. 특히 비로봉에서 구룡사를 향하여 뻗은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르다. 고둔치 동쪽인 부곡리 산막골 일대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대를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 흐르는 계곡들은 섬강(蟾江)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주천천(酒泉川)으로 흘러든다.

 

 

오늘은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毘盧峰:1,288m)에서 향로봉(香爐峰:1,043m)을 거쳐 남대봉(南臺峰:1,181m)으로 이어지는 치악산 종주의 끝자락 봉우리인 남대봉을 오르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특별히 오늘은 분당반딧불이 산악회의 총회가 있는 날이다. 모두들 반가운 표정으로 서로에게 만남의 인사를 나눈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가을의 아침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들판에는 누런 벼들이 아침인사로 살짝 고개를 숙인다.

이천. 여주에 다가가니 안개가 자욱하다. 여주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후 산행지인 원주 치악산 남대봉으로 향한다. 우리는 계절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 자연은 벌써 짙은 녹색에서 붉은 색 계통의 색깔의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덧 산행들머리인 금대분소 버스주차장에 정차한다. (09;00분)

오늘의 산행코스는

금대주차장 → 영원사 2.4km/1;00분 → 갈림길, 남대봉 2.4km/1;30분

→ 남대봉 ⇔갈림길 0.6km/0;20분 → 상원사 0.7km/0;10분 → 성남공원지킴터 5.2km/1;30분으로 산행시간 약 11.3km/4;30분 소요예정이다.

 

 

계곡 따라 난 길로 걷는다. 계곡의 맑은 물과 아름다운 선율로 들리는 물소리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자연풍광들을 감상하면서 위로 오른다.

반디회원들의 산행하는 뒷모습은 산을 즐기는 자들의 모습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걷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얀 백고무신을 신고 걷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걷는 회원도 있다. 참으로 다양하다. 맨발로 걷는 회원님은 춘추가 8학년2반이다(82세). 회원님과 담소도 나누며 잠시 동행한다.

 

 

금대자동차야영장을 지나면서 산을 찬미한 시(詩)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람들은 산을 마음속에 그리며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받아주는 어머니 품과 같이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간 일행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다.

오르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사진에 담기도 하고 다람쥐의 재롱을 한참동안 즐기기도 하며, 또한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소리에 빠지면서 위로 오르다보니 영원사에 다다른다.

 

 

영원사는 신라문무왕 시절에 의상대사가 영원산성의 수호(守護)사찰(寺刹)로서 창건하면서 영원(永遠)하라는 뜻으로 창건된 절이다. 조금 높은 산중턱에 있는 절로서 좌측의 계곡물이 앞을 감싸고 흐르고 있으며, 앞의 높은 산을 안산(案山)으로 하는 곳으로 좋은 곳에 자리 잡았음을 즉감하게 한다. 중건(重建)하면서 영원(領願)으로 바뀌었다가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의 아버지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였다는 역모로 광해군한테 죽음을 당하면서 그의 손자 천석과 군석 형제가 이 영원사에 피신하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너무나 두터웠던 관계로 절명을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영(令)자와 원(原)자의 우측 변에 새조(鳥)를 넣어 그 뜻을 기리고자 영원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영원사를 뒤로 하고 위로 오른다.

영원산성터는 두 골짜기가 만나는 곳에서 갑자기 고도를 높인 곳에 위치해 있어 옛날 도적들이 거처하면서 은둔(隱遁)생활을 하기에 최적이었으며, 적의 침공 시 방어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다시 남대봉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함께 동행 하면서 옆에서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는 계곡의 물소리를 벗 삼아 위로 오른다. 남대봉 1.9km 남은 거리부터는 계곡에 물이 없고, 많은 다래 넝쿨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산은 오를수록 고도를 높이고 있다. 앞서간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힘이 드는 모양들이다. 내려오는 두 명의 산객님들이 백고무신 신고, 산을 오르는 회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산객님들에게 그 회원님은 겨울에도 고무신을 신고 눈 속에 걷다가 고무신이 벗어져 잃어 버렸던 일화를 들려주니 놀라운 표정들이다.

 

 

바로 앞에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의 거대한 2개의 바위가 나타난다.

통천문을 지나자마자 바위 밑에 많은 마른 나무들을 바위에 일렬로 세워놓았다. 마치 구석기시대의 삶의 현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은 계속 고도를 높이고 있다. 잠시 휴식하는 회원님들과 함께 하면서 물과 과일 등으로 갈증과 힘을 축척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나니 남대봉 갈림길이다.

 

이곳에서부터 남대봉까지 평탄하고 걷기 좋으면서 휠링하기 최적이다. 남대봉을 향하면서 전망 좋은 곳에서 아래를 보니 안개가 자욱하여 희미하게 가까이만 보일 뿐이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더 많은 것을 상상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음속으로 남대봉 아래에 펼쳐지는 자연풍광을 마음껏 그려본다. 선두로 간 회원들이 내려오면서 남대봉이 지척이라고 알려준다. 남대봉에 다다르니 다른 산 정상처럼 거창한 정상표지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무에 매달린 ‘남대봉1,181m'라는 나무 현판이 있을 뿐이다.

 

 

그래, 남대봉아! 정상표지석이 없다고 서운해 할 필요 없다.

너는 치악산의 비로봉, 향로봉과 함께 치악산 종주에서 너의 이름은 수많은 산악인들이 기억하고 있으며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너의 이름은 항상 함께 할 것이다.

 

 

남대봉과 만남의 증표를 남기고 넓은 헬기장으로 내려가니 모두들 배가 고픈지 먹을 것을 풀어 놓는다. 회원들이 싸가지고 온 음식들을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얻어먹으니 시장기가 가신다. 남대봉 갈림길로 하산하면서 올라왔던 곳을 바라보니 운해가 장관을 이룬다. 산의 멋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자연의 화폭에 산수화를 그려 놓는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수화! 겸재 정선이라면 이 광경을 화폭에 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디선가 꿩의 푸드득 하는 소리가 난다.

치악산이 꿩치(雉)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꿩이 많다더니 실제 옆에서 꿩의 소리를 들으니 그 뜻을 새삼 느낄 것 같다.

 

 

남대봉 갈림길에서 상원사(上元寺)로 향하는 길 양 옆에는 조릿대 숲으로 이어져 있다. 이 광경 또한 얼마나 아름답던지...

치악산의 유래를 탄생하게 상원사(上元寺)!

상원사에는 날 짐승인 꿩도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목숨을 버리면서 은혜를 갚는다는 설화를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알려야 하는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상원사(上元寺)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사상의 호국 사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절로서 절중에서 으뜸이라는 뜻으로 상원사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남대봉 아래 1,084m 지점에 위치한 상원사는 풍수상 명당길지에 자리 잡고 있다. 기룡혈(騎龍穴)이나 장지중요혈(長枝中腰穴)의 형태로서 꿩이 보은(報恩) 했다는 종각(鐘閣)이 있는 놓여 있는 곳은 아래에서 불어오는 계곡의 바람을 혈지(穴地)인 대웅전(大雄殿)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종각에서 바람이 부딪혀 위로 올라가게 하므로 온화(溫和)한 기운(氣運)이 혈지(穴地)를 감쌀 수 있는 것이다. 좌측능선(청룡)과 우측능선(백호)이 좌우에서 대웅전을 잘 감싸고 있으며, 특히 우측능선(백호)은 대웅전을 감싸고돌면서 안산(案山)을 겸하고 있는 형국이며 마치 꿩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형국과 같다. 대웅전에서 앞을 보면 1,084m라는 높이를 느낄 수 없으며,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어 선경의 땅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대웅전 앞 약간 우측의 샘물은 진응수로 이곳이 명당길지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상원사 대웅전을 감싸고 있는 주변의 바위산의 가감의 조화는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상원사의 자연현상을 보면서 꿩의 형국(풍수상: 물형론(物形論)인 우측능선(백호)과 높다란 절벽위에 세워진 종각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와 종에 와 닿는 강도에 따라 종이 움직이면서 자연스레 종소리가 들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연의 소리를 아마 누군가가 꿩의 형국인 산과 종각의 종소리에 의미를 부여하여 백성을 깨우치려는 뜻으로 꿩의 설화가 이 상원사에서 탄생하였으리라 본다.

우리나라에 있는 절중에서 명당길지에 점지되어 있는 사찰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탄생(誕生)설화나 연기(緣起)설화 같은 것이 많다.

상원사의 신비(神秘)감에 취해 한 없이 넋 놓고 감상한다.

 

 

보면 볼수록 자연의 오묘함에 빠져드는 것 같다. 이제는 내려가야지 하지만 시선은 자꾸만 상원사를 쳐다보게 된다.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하며

 

 

성남공원지킴터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붉게 물든 단풍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드문드문 보인다. 단풍이 붉게 물들었을 때 너무나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이라고 하였던 말뜻을 이해할 것 같다. 서서히 주변은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계곡의 물소리가 함께 따라오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앞서가는 82세와 사십대 중반의 회원 두 분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동행(同行)이란 단어가 연상되며, 또한 반디불이산악회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다.

 

총회를 준비하는 임원진들은 산행도 못한 채 많은 회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봉사하고 있었다.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즐거운 총회와 함께 맛있는 음식과 족구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하루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