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4.일. 분당:흐림, 모악산: 오전: 맑음, 오후: 흐리고 비)
일요일마다 이어지는 산행이지만,
오늘의 산행 목적지인 모악산은 나에게 있어 조금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모악산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번 이곳을 답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친근감을 느낀다.
휴일도 없이 아침 일찍 서둘러 와서 그런지 차에 타자마자 나른함을 느낀다. 차창에 기대어 바깥 풍경과 모악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오늘의 산행을 이끌어주는 대장님께서 20분후면 목적지에 도착 예정이니 준비들 하라고 한다. 괜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산행 줄발시 오후부터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여 걱정이 많았다. 막상 전주 모악산 입구에 도착하니 늦가을을 아쉬워하는 춥지도 않고 서늘하여 등산하기에 적당한 날씨였다.
오늘의 들머리인 신금교에서 출발하여 완만한 비탈길로 이어지는 비단길 등산로로 모악산 정상을 향해 열심히 오르면서
모악산은 어디서 왔으며
왜?
모악산이라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한다.
한반도의 산맥 체계는 1대간. 1정간. 13정맥 즉 백두대간. 장백정간. 호남정맥을 포함한 13정맥으로 나뉘나, 산맥이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일제는 한반도의 자원(지하. 지상 임산물)을 수탈할 목적으로 기존에 있던 산맥체계를 부정하고 일제 때 새로운 산맥체계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재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제의 수탈목적으로 만들어진 산맥체계를 아직도 공부하고 있다.
한반도의 등뼈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기맥하여 지리산까지 이어지는데, 큰 힘을 가지고 오던 중 영취산(1075.6m)에서 한 맥이 갈라져 진안 방면으로 뻗어 마이산 방향으로 향하는 금남호남정맥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주화산(568m)에서 에너지(힘)를 응축하여 북으로는 금남정맥으로 금강까지 이어지고, 남으로는 호남정맥으로 이어져 광양의 백운산(1,218m)을 거쳐 섬진강까지 이어진다.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중간에서 다시 살짝 우측 옆으로 힘을 솟구쳐 모악산(793.5m)을 만든다. 이런 행룡(산이 지나는)과정을 거쳐 형성된 모악산은 전주. 완주. 김제의 3개 행정구역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정상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쉰길 바위’가 마치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형상과 같다고 하여 ‘엄뫼’또는 ‘큰뫼’로 예부터 불러오던 것을 한자로 표기시 ‘모악(母岳)’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
아기를 품고 있는 어머니는 자애로와서 이 세상사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환난과 고통을 보듬을 줄도 알고 아픈 상처를 치료하여 낫게 할 수도 있고 묵묵히 가슴속에 담아줄 주도 아는 것이다.
모악산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품다보니 수없이 불어오는 바람(내환.외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때로는 좋은 일도 있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모악산에 대해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수왕사을 거쳐 대원사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모악산 정상으로 가는 코스인데, 그만 깜빡하고 옆으로 가는 길을 놓쳐 바로 정상으로 향하게 되었다
,
수왕사는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진묵스님이 중창한 절로서 석간수가 유명해 ‘물왕이 절’로 불린다,
진묵대사(1562-1633.73세 입적)는 조선이 숭유억불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자신의 웅지의 뜻을 펴지 못하고 기인으로 한 시대를 살다간 인물로 더 유명하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진묵대사는 스님이었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자신이 대를 이을 수 없으므로 뭇사람들이 향불을 피울 수 있는 명당자리에 어머니를 모셔, 누구든지 이 묘소에 참배하고 소원 빌면 다 이루어진다 하여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비록 자손의 대가 끊겼으나 묘소 옆 성모암 스님들이 잘 관리하고 있으며 지금도 수많은 참배객이 찾아와 불전 함에 시주하고 있어 공짜 제사 밥은 먹지 않고 있다. (성모암 스님들이 크게 발복 받고 있다) 이 내용은 진묵대사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으로 천년향화지지의 명당에 대한 일화이다.
모악산에는 천년고찰들이 많이 있건만 무언가 좀 휑하다는 느낌이 든다. 노송들이 길가에 즐비해 있어서 산을 찾는 내방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런 느낌이 안 난다.
정유재란과 동학민란. 6.25사변을 겪으면서 모악산의 품으로 숨어든 자식들을 보살피기 위해 전란과 화마로 인하여 나무가 자랄 시간이 없게 되어 큰 나무들이 자라지 못 한 것 같다.
그래서 등산로 주변에는 참나무와 같은 잡목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수왕사와 대원사를 빼먹고 오르니 한 달음에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언제 내렸는지 모르지만 주변에 잔설이 조금 남아았다. 새삼 겨울을 느끼게, 찬바람이 온몸을 휘감으니 열어제쳤던 옷깃을 여미게 된다. 전망대 주변에는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을 위해 시원한 막걸리와 따끈따끈한 라면을 팔고 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을 한 입에 가득 담고는 매우 행복해 한다. 그것을 보고 있는 부모는 자식의 모습들이 매우 대견스러워 보이는지 빙그레 웃고 있다.
모처럼 개방한 KBS전주모악산송신소의 전망대에 올라
모악산 793.5m에서 인증 샷!
전망대에서 전주시. 김제시. 완주군의 지형들을 바라보면서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일어났던 사건들을 회상해 본다.
저 멀리 김제평야와 만경평야의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동학민란에 대해 생각해본다.
구한말 조선의 위정자들은 국가의 안위와 백성에 대해서는 안중에는 없고 오직 자신의 부귀영화와 입신양명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은 끼니 걱정에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었는데 이 당시 탐관오리들은 굶주린 백성들을 더 쥐어짜서 자신들의 배만 채웠던 것이다.
이런 탐관오리들의 부도덕한 현실정치에 반발하여 일어난 동학민란은 녹두장군 전봉준에 의해 주도 되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아무 뜻도 모르고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않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라는 노랫말과 같이 사람들의 애간장을 다 녹이는 애절한 음으로 그 당시 불러졌던 이 노래는 힘없는 우리 조선이 일본. 청나라 등 열강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을 노래했던 것이다.
파랑새는 일본. 청나라를 뜻하고 녹두 꽃은 전봉준을 청포장수는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인 것이다.
파랑새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녹두꽃은 결국 파랑새의 앞잡이의 신고로 붙잡혀 1895년 3웚29일 41세 나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오늘날의 한국정치도 구한말과 어쩌면 유사한 면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계는 지금 패권주의로 내닫고 있는데 우리는 매일 집안싸움만 하고 있고 국민들은 갈수록 힘들어 죽겠는데 정치인들은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으니 너무나 개탄스럽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씁씁한 마음으로 전망대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데, 길이 헷갈려 모악산 정상주변을 한 바퀴 돌아 헬기장 부근의 양지바르고 아늑한 곳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마침 주변에는 널빤지가 있어 식사용 탁자로 사용하기에 적절했으며, 여럿이서 각자 싸가지고 온 반찬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운 환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함께 온 일행부부가 라면을 끓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먼저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산불 걱정으로 불안해 보였다. 한 분이 용기를 내서 산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불을 피우는 것이 아니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래도 걱정스러웠는데, 알고 보니 발열제를 냄비에 넣으면 물이 금방 끓는 신상품의 냄비로 추운 겨울에 따끈하게 추위를 녹이는데 매우 실용적일 것 같다.
식사 후 지근거리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금산사를 바라보니 손을 뻗치면 금방 닿을 것 같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 599년에 창건하였으나 수차례의 전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사찰이나 우리에게는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역인 ‘서인석’의 패기 넘치고 활달한 연기력은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역발산기개세로 유명한 ‘항우’를 연상시킨다.
신라 말 백제를 부흥시켜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은 맏아들 신검이 4째 동생인 금강을 죽이고 쿠데타로 아버지인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킨다. 이에 격분한 견훤은 고려 왕건에 투항하여, 왕건과 함께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신검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왕건은 이이제이(오랑캐는 오랑캐로 무찌른다)전법으로 책사인 능환과 두아우인 양검. 용검만 죽이고 신검에게는 벼슬을 내리고 잘살게 하여준다.
견훤은 후백제의 멸망과 부모. 자식 간의 골육상쟁으로 인한 자식들의 죽음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마지막 눈을 감는다.
고려 왕건은, 견훤이 눈감을 때 ‘내가 후백제를 세운 완산(전주)이 그립다’ 하여 완산에 멀리 보이는 황산벌에 고이 잠들게 하여 주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당시 한 때 일국의 왕이었던 견훤의 무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며 들판에 휑하게 있어 명당과는 거리 멀었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비운의 견훤 왕이 논산 연무읍 금곡리 산18번지에 외롭게 잠들고 있다.
아쉽지만 지나간 역사를 곱씹으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둘러 뒤쫓아 따라갔으나 일행들은 보이지 않는다.
천일암. 쉼터. 590봉우리를 지나 쉬엄쉬엄 주변 경관을 휘둘러보면서 내려오다 보니 가파른 절벽에 다다랐다. 로프를 타고 절벽을 내려오는 재미는 제법 괜찮았다.
모태정 조금 못 미쳐 좌측으로 난 김태서 묘로 향했다.
전주김씨 문장공 김태서 묘는 현대사에서 풍수지리를 인구에 회자시킨 손석우 선생의 ‘터’란 책으로 인하여 세상에 알려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고려 때 문장인 김태서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의 7세손이다. 손석우 선생에 의하면 김일성은 김태서의 32대손이라고 하며, 이 김태서 묘의 발복으로 김일성이 북한의 주석으로 49년을 통치한다고 하며 또한 77수의 원리에 의해 1994년9월에 사망한다고 책에 기술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해에 김일성이 사망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32대란 숫자는 상징성은 있으나 보통의 발복 시기는 4대. 5대 즉, 증조부모나 고조부모가 사망한 후에 태어나는 후손에게 크게 영향이 미치게 된다고 한다.
한 민족의 동족상잔의 아픔을 이 한반도에 안겨주었던 김일성이기에....... “류방백세(流芳百世) 유취만년(遺臭萬年)”
(향기로운 이름은 백세를 가고, 더러운 이름은 만년을 간다.)
글귀가 어울리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 후세 역사가는 어떻게 기술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우리는 이념의 갈등과 지역의 갈등 등으로 반목으로 점철되어, 국가의 결집력이 약화되어 국력손실이 너무나 큰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있다가 보니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의 다 내려오니 선녀폭포와 사랑바위의 전설이 깃든 폭포에 다다랐다. 선남선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준다. 선남선녀의 사랑이 잘 이루어지도록 축원하는 스님의 목탁 두드리며 불경외우는 소리도 왔다갔다는 등산객의 마음을 잡지 못하였는지 한참을 있어도 시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모악산의 산행은 고은시인의 모악산으로 대변하는 것 같다.
모악산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 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사람들마져
어서오라 어서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여기 고스락 정상에 올라
거룩한 숨 내쉬며
저 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 물과 나무 어진짐승들 한 핏줄이외다
세세생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도 한 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 고장 모악산은 천년의 사랑이외다
오 내 마음 여기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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