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錦山)에 올라 남해(南海)를 바라보다
(2013.12.1 분당: 약간 안개. 남해: 맑음)
매섭던 한파도 금주는 풀리고 다음 주부터 다시 추워진다는 일기예보
일주일이 요즘 들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
월요일이다 싶으면 벌써 일요일이다. 산행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주는 남해의 금산을 산행하기로 되어있다.
남해하면 생각나는 것이 너무나 많은 곳이다.
특히, 노산 이은상 시인의 가고파란 시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딜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동무
오늘은 다 무얼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중략.......
고향을 떠나 살아야만 했던 남해바다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보물섬으로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알려진 남해.......
날씨가 풀렸다고 하지만 아침 공기는 제법 쌀쌀하다.
오늘의 산행은 장거리다. 분당에서 남해 금산까지 왕복이다.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적어도 가는 데만 5시간 이상소요 되어서 차량 탑승시간만 10시간 이상 소요된다.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많은 회원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 모두들 일주일만이지만 환한 미소로 반가워한다. 차에 타자마자 회원들의 원만하고 안전한 산행을 책임지고 봉사하게 되신 신임 산행대장의 아나운서 같이 차분한 어투로 산행에 대한 주의 사항과 앞으로 산행에 대한 방침을 말한다.
출발시의 주변 산들은 하얀 눈으로 쌓여 있어 완전한 겨울이다.
차안은 뜨거운 공기로 습기가 차 밖을 볼 수 없다. 열심히 창문을 닦고 밖을 보려고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뿌옇게 된다.
다시 닦기를 반복한다. 아예 포기한다. 이 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사용할까?
예전에 읽었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펼친다.
미지의 동방세계를 서방에 알렸던 책으로 유명하다.
마르코 폴로와 같이 나도 항상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떠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책에 빠져 있다 보니 벌써 덕유산 부근을 지나 산청휴게소에서 휴식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마치 승객 여러분 내리실 때 잊으신 물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이 차량과 차량번호를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다.
산청을 지나면서 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들판의 전경은 가을걷이를 금방 끝낸 뒤의 모습같이 볕 짚을 둘둘 뭉쳐 둥그렇게 만들어 놓은 가축사료들이 들판에 널려 있다.
우리의 버스는 계속 달려
진주 남강을 지나 사천시로 접어들어 삼천포로 향한다.
누군가의 입에서 바다다 하는 탄성이 나온다. 바다도 그냥 바다가 아닌 남해의 바다인 것이다. 당장이라도 푸른 바다에서 고기들이 펄쩍 펄쩍 튀어 오를 것 같다.
아치형의 웅장한 삼천포 대교를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잔잔한 푸른 바다 위에 수많은 아름다운 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곳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어딜 가던지 이런 고향을 잊을 수 있겠는가?
떠날 때 온통 하얀 눈만 보다가 새 생명이 꿈틀대고 있는 섬들의 작은 밭에서 마늘과 시금치가 푸르게 자라고 있는 광경은 얼었던 마음을 녹여 주는 것 같다.
이렇게 주변 경치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하다.
섬들과 푸른 바다와 유럽풍의 아담하고 멋진 집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다.
주변 경치와 푸른 바다를 보다보니 오늘의 산행지 입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산행 온 많은 버스가 주차해 있었다.
12시경에 도착하다 보니 우리의 버스는 하나 남은 주차 공간에 겨우 비집고 주차 할 수 있었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늦은 시간관계로 당초 산행하기로 하였던 것과 반대인 출발지 - 쌍홍문 - 좌선대 - 상사바위 - 헬기장 - 단군성전 - 금산정상 - 보리암 - 쌍홍문 - 출발지로 하는 원점 산행이 되는 것이다.
남해의 금산은 많은 역사와 일화를 간직한 곳이다.
보타산으로 불리던 것을 원효대사가 서광이 비춘다고 하여 보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드리며 훗날 임금이 되면 그 보답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싼다고 한데에서 유래하며, 조선의 왕이 된 후 비단 금(錦)자를 하사하여 금산(錦山)으로 불러지게 된 것이다.
금산(705m)은 하얀 백사장으로 유명한 상주해수욕장 바로 지근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정상까지 이어지는 곳으로 계속 오르막의 힘든 산행이 된다.
초겨울이지만 등산로 입구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 단풍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곳도 있으며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동백나무 같은 난대성 식물군들이 눈에 뛴다.
아무리 오르막이 심하더라도 오르려는 질주 본능이 발동하여 힘찬 기관차와 같이 위로 위로 비지땀을 흘리며 헉헉거리면서 쌍홍문까지 단숨에 오른다. 금산의 관문이며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하여 원효대사가 이름 지은 쌍홍문 굴에서 올라온 아래쪽의 전경을 보니, 멀리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상주해수욕장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쌍홍문을 지나 왼쪽 방향으로 가자 작은 갈대의 오솔길이 나온다. 길이는 짧지만 매우 호젓했다. 점심때가 되었지만 원만한 산행을 위해 일단 쌍홍문 지나서 점심 먹기로 하였기 때문에 우리 선두그룹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산장 쪽으로 갔다. 많은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느냐 삼삼오오 모여 나름대로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일행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마침 한 자리가 비어 있는데 주변경관을 조망하기 최적의 장소로 잡았다. 운이 좋았다. 이 자리가 강호동이 이곳에서 식사하면서 촬영하였던 곳이라 한다.
산장에서 제공한 파전과 막걸리와 5명이 싸가지고 온 식사와 여려 반찬들(막걸리 3종류, 김치 3종류, 오리훈제, 호박전, 가지전, 마늘. 굴국, 꼬막, 계란, 디저트로 양다래, 귤)
아마 등산하면서 이런 진수성찬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식사하기로는 처음인 것 같다.
등산이 아니라 유람 온 뜻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동료회원들을 불러 아직 남아 있는 막걸리와 여러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다음 등산객을 위해 자리를 비워준다.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상사바위에 올라 상사바위에 얽힌 설화를 보면서, 얼마나 한 여인을 사모했으면 헤아릴 수없이 이 산꼭대기에 올라 남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애타는 감정을 산천에 호소했으면, 산천의 응답으로 사모하는 아름다운 여인(과부)의 마음을 움직여 이곳에서 소원을 풀어 그 보답으로 상사바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겠는가?
상사바위를 뒤로하고 헬기장을 거쳐 단군성전에 참배한다.
우리는 단군왕검을 단지 전설적인 인물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황제나 치우에 대한 전설을 실제인양 거대한 석상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중국 섬서성에 있는 황제의 릉이 실제인지는 모르나, 진시황제뿐만 아니라 수많은 황제들도 참배했다고 하며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인 단군왕검이 BC 2,333년에 나라를 세웠으니, 중국의 황제나 치우와 거의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우리 한민족의 정통성을 대대적으로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고 본다.
물론 개천절 행사는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며 국민의 의식변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햐면, 중국은 호시탐탐 동북공정 등으로 역사를 왜곡하여 우리 한반도를 자신들의 영역 속으로 집어넣으려는 흑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금산정상인 망대(705m)에 올라 남해(南海)를 바라본다. 남해금산의 봉수대는 한반도 최남단의 봉수대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과거 전통시대의 통신수단이다. 봉수대는 적의 침입이나 위기의 상황에서만 주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때로는 잘못 사용하여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중국 주나라 유왕은 포나라에서 바친 포사를 총애했다.
포사가 아들을 낳자 왕후와 태자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그녀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다. 이러함에도 포사가 웃지 않자 유왕은 온갖 머리를 짜서 웃겨 보려고 하였지만 그녀의 웃음을 볼 수 없었다.
결국 유왕은 포사가 웃도록 하기 위해 여산의 봉화대에 봉화를 올리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제후들이 도성의 위급함을 구하기 위해 급히 군대를 이끌고 달려와 왕을 배알했다. 하지만 제후들은 도성에 온 후에야 적의 침입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사는 이러한 코메디 같은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 후 유왕이 여러 차례 거짓 봉화를 올리자 제후들도 여러 번 속았다.
마침내 적이 도성을 공격하였을 때는 수없이 속은 제후들은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결국 도성은 적에게 점령당한 후 유왕과 태자는 죽임을 당하고 포사는 사로잡혔고 주나라(서주)는 멸망하게 되었다.
봉수대에서 갈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보리암이 나타난다.
남해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같이 관음보살상을 모시는 곳으로 한국3대 기도처다.
보리암의 산세는 매우 빼어날 뿐만 아니라 자연 지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좌측 바위와 우측 바위가 잘 감싸주고 있고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 앞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주어 온전한 기운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좋은 터에서 기도를 하면 기도발이 잘 먹힌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좋은 터인 보리암에 한참 있었더니 괜히 몸과 마음이 상쾌한 것 같다. 더 있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서 원점 산행지로 하산한다.
쌍홍문 굴에서 아래의 풍광을 감상하니 올라 올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 금산의 관문을 지키는 수문장인 장군바위가 턱 버티고 서서 금산으로 올라오는 액운을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헉헉대며 올라 왔던 길을 이제는 터벅터벅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먼 장거리 산행인 남해 금산을 뒤로 하고 버스에 몸을 싣고 근처 가까운 파도횟집에서 우럭 매운탕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남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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