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따라 걷는 길

봉화 문수산(1,205m)에 올라 지혜(智慧)의 여신(女神)을 만나다

미지부동산 2014. 8. 19. 18:02

봉화 문수산(1,205m)에 올라 지혜(智慧)의 여신(女神)을 만나다

 

(2014. 8.17. 일. 분당; 비, 봉화 문수산; 흐리고 안개)

비가 온다. 지난밤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입추가 지나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아침께는 서늘하다 못해 약간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오늘 산행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비가 오는데 집에서 조용히 있으면서 지내면 덧나는가? 산에 가면 밥이 나오는가? 아니면 떡이 나오는가? 혹은 숨겨 놓은 그 무엇이 있는지... 왜 산에만 가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집에서 이런 불평불만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막상 산에 가서 산에 몰입하면서 산과 대화를 하고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광과 정취와 맑은 공기를 맡으면서 걸어가면 왜 산에 가야하는지 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알고 자꾸만 산에 가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은 신라시대 의상대사(625년~702년)가 창건하였다는 축서사을 품고 있는 경상북도 봉화에 있는 문수산(1,205m)을 오르려 한다. 분당 야탑 BYC 건물에서 07;10분에 출발한 버스는 3번 국도를 지나 중부, 영동고속도 달리다 잠시 문막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 하려고 진입하였으나 버스가 너무 많아 정차할 곳을 찾지 못해 그냥 지나친다. 비가 오고 있는데 산을 찾아 떠나는 산객님들의 숫자가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하는 국민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게 된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한사람으로서 긍지도 가지면서,,,

중앙고속도로상의 치악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후 우리의 버스는 고속도로를 한없이 질주해 간다. 경상북도 풍기에 다다르니 비는 오지 않고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둥실 둥실 떠다니면서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 기세다. 풍기지방은 인삼과 사과가 유명한 지역답게 과수원들에는 가지가 부러질 듯이 주렁주렁 달린 붉은 사과들이 탐스럽게 열려있다. 풍기IC에서 빠져나와 5번 국도를 달리다 다시 봉화방향으로 36번 국도를 향해 달린다. 어느덧 인구 4만인 봉화군의 군청소재지인 봉화 읍내가 나타난다. 봉화시내를 주마간산 격으로 감상하면서 축서사를 품고 있는 문수산 방향으로 접어든다. 축서사로 가는 좁은 도로 옆의 좌측에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으며, 우측의 밭에는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과수원들의 사과는 마치 젊은 처자의 볼처럼 홍염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예정시간 보다 조금 빠른 10시30분경에 축서사에 다다른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버스종점, 축서사 → 경주이씨묘 → 능선 → 문수산 2.4km/1;40분 → 축서사 삼거리 → 예배령 2.8km/1;00분 →980봉 → 주실령 3.0km/1;20분으로

산행시간 약 8.0km/4;00분 소요예정이다.

 

해발 1,205m인 문수산의 중턱인 800m지점에 자리 잡은 축서사는 짙은 안개로 마치 선경(仙境) 속에 있는 것은 같은 느낌을 준다.

축서사가 위치해 있는 곳은 마치 독수리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축서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축서사의 축자가 ‘독수리 축자’이고, 서(棲)는 ‘깃들다’라는 뜻으로 독수리가 사는 절이라는 의미로서 즉 독수리는 지혜(智慧)를 뜻하므로 큰 지혜를 뜻하는 문수보살을 뜻하므로 축서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의상대사가 축서사를 점지하기 전에 있었던 창건 연기 설화에 의하면 ‘문수산 아래 지림사 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스님이 어느 날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발산하고 있어 광채가 나는 곳을 달려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 동자는 청량산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라는 설화가 있으며, 신라 때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수다사에서 수도하던 자장율사(590년~658년)가 태백산을 찾아 헤메던 ‘무수보살‘이 이 산에 화현(化現)하였다 하여 문수산이라고 했다는 설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에 풍수지리가 전래된 것은 자장율사에 의한 것으로 본다면’(풍수랑 놀면 부자가 된다. 청어람. 2011.2.10. 박종경 지음), 이 당시 풍수지리에 대해 일반 백성에게 설명하여도 알 수 없었으며, 또한 풍수지리라는 자체는 중국에서 볼 때 현대의 최첨단 기술에 속하여 국외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금기시하였기 때문에, ‘터’의 좋고 나쁨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일반 백성들에게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부처님에 대한 설명으로 그 답을 대신 하였던 것 같다.  

자장율사가 잡은 5대 적멸보궁(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이 아직까지 현존하여 오면서 많은 백성과 한반도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풍수지리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수산의 축서사도 풍수지리상 동물의 형상으로 볼 때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아서 알이나 새끼를 품고 있거나 또한 날아오르려는 형국과 같은 명당에 자리 잡은 절이다. 독수가 서식하려면 높은 산 중턱의 바위 절벽으로서 앞이 훤히 뚫려 날아오르기 좋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곳 축서사에서 앞을 보면 이와 똑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다. 축서사를 뒤로 하고 경주이씨 묘가 있는 능선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찾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 왔다 갔다 한다. 축서사 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우측으로 난 길 따라 가니 큰 물통이 나타난다. 이 물통 때문에 등산로를 찾는데 힘이 들었다.

 

 

 

경주이씨 묘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이다. 비는 오지 않으나 습도는 높고 바람은 불지 않아 비지땀이 줄줄 흐른다. 안개가 자욱한 비탈길을 오르는 것 자체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한다. 산은 오르면 정상이 나오듯이 어느덧 산마루가 나타난다. 좌측으로 가면 문수산으로 가는 방향이고 우측 능선에는 경주이씨 묘가 있다. 등산지도상 표시된 묘지로서 상당히 거창한 묘인 줄 알았으나 그렇지 못하고 평범한 묘였다. 산 능선에는 묘를 쓰지 않아야 하는데 등산하다보면 능선에 많은 묘들이 있다. 

 

그러나 관리 상태를 보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과룡지장(過龍之葬)은 3대내(三代內) 절향화(切香化)란 말과 같이 집안이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경주이씨 묘는 조금 사정이 다른 것 같다. 묘의 봉분 위에는 몇 개의 고총(古冢)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곳이 좋은 자리라는 것을 암시하듯 하다. 능선 상에 묘를 쓸 수 있는 경우는 기룡혈(騎龍血)이라는 특수한 경우에만(괴혈:怪血) 가능한 것이다. 이럴 경우는 앞에 본신 안산(案山)이 있어야 한다. 비록 명당이라고 하여도 혈(血)자리에 정혈하지 못하면 그 지기(地氣)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또한 날짐승(즉 새 등)이나 동물의 형국을 한 산의 경우는 석물을 하지 않는다. 이 묘의 경우는 간단한 묘비만 있을 뿐이고 다른 석물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문수산 정상을 향하여 다시 발길을 옮긴다.

얼마쯤 가다보니 한 회원께서 다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사연인 즉은 안경을 벗고 땀을 닦다가 날 파리가 덤벼들기에 탁 쳤더니 안경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얼마쯤 가다가 보니 앞이 잘 안보여 그때 안경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사라진 정확한 장소를 알지 못하여 안경을 쓰고 온 것이 확실한 시점부터(경주이씨묘) 거슬러 올라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가 찾았으나 찾지 못해 그냥 갈 수 밖에 없어 안타깝다. 문수산을 향해 오르다보니 틈틈이 산의 정상부분에 햇살이 살짝 머리를 내밀었다 들이 밀었다 를 반복한다. 문수산(1,205m) 정상에 올라 정상 표지석를 안고 감회에 젖는다. 지혜의 여신인 문수보살이 이 산에 화현(化現)하였다 하여 붙여졌다는 말과 같이 큰 지혜는 아니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바로 밑에 있는 헬기장에서 많은 회원들과 즐거운 점심을 즐긴다. 점심이 끝나갈 무렵 안경을 잊어 버렸던 회원께서 도착했는데 잃어버린 안경에 대한 애착 때문에 다시 한 번 찾아보았다고 한다. 성과가 없어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산에서 안경이 없으면 걷는데 엄청나게 불편할 것이다. 아무쪼록 무사히 산행이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주실령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걷기에 호젓하다. 처음은 참나무 숲으로 이어지더니 조금 지나자 쭉쭉 뻗은 금강송(일명;춘양목)들이 붉은 자신의 몸을 과시하고 있다. 아마 이처럼 잘 생긴 소나무들은 거의 드물 것이다. 그 생김을 인간에 비유한다면 잘 생겼다고 여자들이 말하는 장동건. 현빈. 원빈. 강동원. 김수현 등도 이 나무들에게 못 미칠 것이다. 문수산 정상에서 주실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흙산으로 걷기에 참으로 편하다. 피톤치드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을 받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주실령으로 향한다.

주실령 800m지점이라는 이정표를 지나 한참 가다보니 포대를 쌓아 놓은 듯한 헬기장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다닌 흔적이 안 보인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주변의 발자국을 확인하니 이곳에 등산객이 왔다간 흔적이 없다는 것을 재차확인하고 돌아서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산악대장이 찾는다. 지나쳤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이정표를 확인하고 사진까지 찍어 왔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봉화군에서 제작하여 만든 프라스틱 이정표는 부실제작으로 다 떨어져 나가 이정표로서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떨어져 나간 것을 누군가가 주어서 이정표 기둥에 올려놓은 것이 방향을 잘 못 가르키는 바람에 1km이상 알바를 하게 되었다. 운동량이 모자란다 싶었는데 운동을 더하게 하여주는구나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되돌아와 산행 날머리인 주실령에 도착하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 괜히 나 때문에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기다리는 버스에 올라타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넘나들며 남한강의 원류지인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계곡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육신을 계곡의 맑은 물에 담그니 채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나온다.

몇 번을 시도하지만 너무나 차가워 마치 남극의 얼음물에 들어갔다 온 기분이다. 팔 다리가 얼어서 터질 지경이다. 이처럼 차가운 물은 한겨울에도 거의 겪어보지 못했는데 우구치리 계곡의 물은 차도 너무너무 찬 것 같다. 심신을 정화한 후 가장 연장자이신 박 고문님 내외께서 여름에는 기력을 보양시켜주는 것이 닭백숙이라고 하면서 우리 반디산악회원들에게 즐거운 산행 뒤풀이를 제공하여 주신다.

 

즐거운 산행과 맛있는 음식을 곁들이니 이 보다 좋은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버스는 알아서 갈 것이므로 주변 경치를 마음속에 담는다. 구름이 넘나드는 백두대간의 산자락을 굽이굽이 넘어서 김삿갓의 휴게소에 잠시 들른다. 방랑시인 김삿갓!

조상(조선시대 홍경래 난)을 욕보였다는 이유로 평생 하늘을 보지 않고 삿갓을 쓰고 살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당대의 지식인...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김삿갓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행정면까지 김삿갓 면으로 개명한 것 같다. 세월은 흐른다. 흐르는 세월에 맞게 우리의 삶도 변화여야 하는 것이다. 포도밭에는 많은 포도송이들이 영글어가고 영월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강은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우리의 버스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가기위해 영월을 지나 제천 충주 장호원 이천으로 오면서 대한민국의 산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 같다. 예전에는 민둥산이었던 산이 온통 푸른 녹음으로 변해있고 잘 정리된 논. 밭에서는 오곡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그 한 가운데 아담하게 지은 집들은 여유로움과 풍성함을 함께 느끼게 한다. 우리의 오늘 산행도 이런 여유로움과 즐거움으로 모두들 산행 하였으리라 보여 진다.

즐거운 산행은 자신의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토양과 자양분이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