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칠성봉(900m)과 구재봉(768m)을 오르며 ‘토지‘와 ’화개장터‘와 ’매화꽃‘을 융합하여 한국 속의 한류를 탄생시킨 섬진강을 생각하다
(2014.3.23, 일. 분당: 맑음, 하동: 맑음)
섬진강!!!
강(江),즉 물은 생명체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다.
지구는 태양계로부터 46억 년 전에 떨어져 나와 생성된 행성으로서 수없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지구에 물이 생기면서 생명체가 출현하게 되었다. 우리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20만 년 전에 처음으로 지구상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또한 물에 의해 인류도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명의 발생지를 본다면 중국의 황하강 유역에서 태생된 황하문명, 인도의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유역에서 태생된 인도문명, 중동아시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태생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에서 태생된 이집트 문명을 보더라도 모두 물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물이 없다면 우리는 잠시도 살 수 없다.
이런 물과의 관계로 인하여 우리는 물만 보면 정답고 항상 가까이 하고 싶어 한다. 인간에게 조금만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누구나 물을 찾게 된다. 비록 산을 찾을지라도 산에서도 계곡의 물을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항상 물과 관련 있는 장소를 찾아 강이나 바다 등을 찾아 오늘도 내일도 또 그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떠날 것이다.
섬진강 하면 한국인의 가슴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의 고운 모래와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강변을 따라 강물과 함께 하는 도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벚꽃의 터널과 강변의 산기슭 따라 하얗게 피어 있는 매화꽃과 유행가의 가락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넘나드는 화개장터에서의 옛정취와 녹차 밭에서 갓 따온 새순으로 볶은 그윽한 차향으로 가슴속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라 본다.
우리가 모두가 간절히 가고 싶고 보듬고 싶어 하는 섬진강이 처음부터 가고 싶어 하던 곳은 아니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한류문화가 세계인들을 열광케 하고 있듯이 섬진강변에서도 한국 속에 한류가 먼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하동의 악양면 평사리에서는 한국문학사에서 금자탑을 세운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조영남 가수의 ‘화개장터‘란 노랫가락에 의한 화개장터와 강 건너 산기슭의 홍쌍리 여사의 인고의 노력으로 일궈낸 매화농원에 피어 있는 매화꽃이 결합되어 이루어 낸 것으로, 문학과 예술과 삶의 현장이 융합되어 새로운 한국 속의 한류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문학과 예술과 삶의 현장을 결합되게 한 섬진강을 잉태시킨 산을 찾아 떠난다.
이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니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몸소 피부로 느끼는 것 같다.
차창을 통하여 보는 밖의 풍경은 한가롭다.
이른 아침이지만 고속도로는 많은 차량으로 붐빈다. 날씨는 쾌청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밝게 빛나던 태양도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도를 접어드니 서서히 사라진다. 이제는 주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안개가 자욱하다. 1시간 30여분 달려 08시 30분경에 탄천휴게소에 가까이 다다르자 차내 안내멘트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회원들을 깨운다.
탄천휴게소에 도착하니 주차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수의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휴게소의 상점들은 이른 아침인데 바쁘다. 참으로 부지런들 하시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안개도 사라지면서 밝은 햇빛이 온 산천을 감싸고 있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경부, 천안~논산, 호남, 완주~순천, 88고속도로를 쉼 없이 달려가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따라 난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구례에 접어드니 완연한 봄이다. 도로변의 집들 주변에 피어 있는 매화와 개나리, 산수유 꽃들이 반기고 있고, 들판에는 파릇파릇한 싱그러움을 느끼게 하는 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많은 비닐하우스에서는 오이작물을 출하하느라 농부들이 바쁜 일손을 움직이고 있다.
섬진강변을 따라 줄줄이 심어진 벚꽃나무에서는 벚꽃을 피우려는 꽃망울을 맺고 있다. 강변의 뚝 따라 이어지는 노란 개나리꽃의 향연은 가히 장관이다. 또한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는 녹차 밭의 풍경도 참으로 아름답다.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접하면서 물 따라 내려가다 보니 활짝 핀 목련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 아름다움에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섬진강변의 하동의 악양면 평사리와 구례와 광양 방향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칠성봉(900m)과 구재봉(768m)을 오르기 위해 가고 있지만 섬진강변에서 연출되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뺏기고 있다 보니 산행을 가고 있다는 것 자체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모두들 들떠 있는 것 같다.
상춘객이 많은 탓인지 아니면 버스도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놓고 구경하는지 가는 것을 잊은 것 같다. 벌써 출발한지 4시간도 훨씬 지난 시간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들게 하는 섬진강 위에 건설된 ‘남도대교’ 앞에 있는 신호등 때문에 많은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강 건너 홍쌍리 여사의 매화농원에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활짝 피어 있고 군데군데 노란 개나리꽃이 색의 아름다움을 더 빛나게 한다. 밝은 태양의 빛을 받은 강물은 눈을 부시게 한다. 강변의 하얀 백사장이 우리가 가는 길 따라 함께 가고 있다.
화개장터 쪽에서 흐르는 여울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여울목 부근에서는 때 이른 강태공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남도대교를 지나자 차는 속도를 낸다. 어느덧 ‘토지’의 세트장이었던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이 있는 방향으로 접어든다. 우측에는 동정호와 ‘토지’의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이’의 다정다감한 모습과 같다하여 ‘부부송’이라 불리는 나무 두 그루가 평사리 논 한 가운데 있다.
산행대장은 오늘의 산행시 주의할 점으로 금봉사 절 조금 못 미쳐 우측으로 가야만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한다.
버스는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악양 중.고등학교를 지나 언덕으로 오르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 약간 공간이 넓은 남의 집 앞에서 차를 세운다. 모두들 부산하게 움직인다. 지금 시간이 11시 30분이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악양중고 → 금봉사 방향 → 동점재 갈림길(右) (2.6km / 0:40분) → 동점재 → 임도안부(3.1km / 1:40분) → 삼화실재 → 구재봉(768m) (2.2km / 1:00분) → 활공장 → 미동, 개치 (3.6km / 1:40분)로 이어지는 산행으로 산행시간은 약 11.5km /5시간 예상
(단, A코스는 동점재 갈림길 → 칠성봉(900m)을 왕복 6km로 추가 시간 1시간 더 소요된다. 산행시간 17.5km / 6시간 이상 소요 예정)
오늘은 A코스로 가기로 작정하고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오르는 양쪽 길옆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다. 오르면서 일행들의 모습들과 매화꽃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사진에 담는다.
늦게 도착한 관계로 시간적으로 그리 여유가 없어서 바쁘게 산을 오르고 있다. 금봉사까지 오르는 길도 꽤 가파르다. 금봉사 약간 못 미쳐 얼굴을 내미는 것조차 부끄러운지 동백꽃이 살짝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산행대장의 주의 사항을 상기하면서 금봉사 우측으로 난 길 따라 위로 오른다. 앞서간 일행 중 두 분이 길을 잘못 들어 잠시 알바를 한 것 같다.
동점재 갈림길 따라 위로 오르는 길은 흙산이지만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작은 돌덩이들과 바위들도 많다. 가파른 길을 오른다는 것은 숨도 차고 힘도 든다. 같이 가던 일행도 하나 둘씩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잠시 사진 찍고 지체하다보면 금방 일행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다시 따라 잡기는 매우 힘이 든다. 힘든 여정을 오르면서 박경리 선생이 살아온 삶에 대한 화두를 잡고 수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시간도 상당히 흐른 것 같다. 배꼽시계에서 배고파 배고파하는 신호가 오는 것 같다. 힘이 들 때 마다 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이 원기를 심어준다. 이제는 자연도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 올의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맨살로 있었는데 창피하게 생각하는지 조금씩 조금씩 얇은 옷을 갈아입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동점재 갈림길에 도달하니 먼저 올라간 일행 세분이 구재봉(768m) 방향으로 가면서, 칠성봉(900m)으로 가려면 반대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하며 세분이 그쪽 방향으로 갔다고 한다.
칠성봉(900m)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이라 힘이 무척 많이 든다. 힘이 들다 보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특히 박경리 선생이 왜? 문학이란 것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는지! 그리고 대서사인 ‘토지’를 집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박경리 선생이 끈질긴 삶을 놓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사기’를 쓴 중국의 ‘사마천’을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마천은 흉노족에게 포로로 잡힌 일면식도 없는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한(漢) 나라 황제(皇帝)인 무제(武帝)에게 미움을 사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궁형(宮刑)(남자의 성기 뿌리를 도려냄)을 받고 죽음보다 더 처절한 삶을 살면서 현세기의 최고의 걸 작품으로 추앙되고 있는 ‘사기(史記)’라는 역사서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박경리 선생의 삶도 아마 ‘사마천(司馬遷)’의 삶과 유사했다고 자신은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어려서 아버지로 부터의 버림받음과 6.25전쟁으로 인한 남편과의 사별과 어린 아들의 죽음과 전쟁 과부로서 유교성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적응해가면서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을 것으로 본다. 어려서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수많은 얘기들과 실제로 외할머니 집안의 몰락하는 과정이 자신의 가슴속을 억누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반항심과 현실사회가 주는 수많은 아픔들을 ‘토지’라는 책속에서 다시 탄생시켜 현실화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월터스토프’는 “고통의 골짜기에서는 절망과 쓰라림이 양조(釀造)된다. 또한 품격도 제조된다. 고통의 골짜기는 영혼을 빚어내는 계곡이다.” 박경리 선생은 혼신을 다하는 헌신과 문학을 위해 목숨을 건 외로운 싸움과 인고의 세월을 견뎌 왔기에, 46세에 시작하여 26년이란 세월이 흐른 72세가 되어서 16권이란 대작을 마무리 하게 된다.
박경리 선생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오르는 흙산은 폭신폭신하여 오르기는 쉽지만 경사도가 워낙 심하다보니 허벅지 근육이 많이 당긴다. 어느새 띠 동갑인 고문님이 뒤따라오고 앞서 갔던 일행 중 한분과 만나서 전망 좋은 곳에서 섬진강과 악양면 평사리 들판의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현장들을 멀리서나마 사진으로 담는다.
조금 평평한 곳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가파른 경사길이 나온다. 위로 위로 계속 오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양지바른 곳으로 바로 뒤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있는데 바로 밑에 풍수지리상 윤형(輪形)으로 보이는 둥근 땅의 모양들이 여러 겹 둘러 켜켭으로 쌓여있는 증좌들이 보인다. 틀림없이 명당(혈)자리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명당이 있는 곳을 조금 지나니 칠성봉(900m) 정상에 도착한다. 먼저 도착한 두 분은 벌써 점심을 막 끝내고 일어선다. 함께한 일행 네 사람은 시장기가 극도에 달한 상태에서 맛있게 즐거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에 동점재 갈림길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온 일행들과 합류하여 이곳 칠성봉(900m)에 왔었다는 증표로 사진을 남긴다.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기 위해 조금 전 식사하고 있었던 분들이 있던 곳으로 가니, 진주에서 왔는데 연합연맹이라고 자신들의 소속을 말하며 서로 수인사를 나눈다. 우리가 분당에서 왔다는 것에 상당히 먼 거리인데 하며 관심을 가진다. 그 중 한 사람은 명함까지 주면서 자신이하고 있는 사업체의 본사가 분당 판교라고 하면서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는 눈치다. 내가 이곳이 명당(혈)이라고 하니 모두들 한 자리로 몰려와 기를 받겠다고 한다. 갈 길이 바빠 빠른 걸음으로 하산한다. 하산하면서 멀리 우리가 다시 가야할 구재봉(768m)이 아득히 멀리 보인다. 저렇게 멀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아래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동점재 갈림길까지 내려가는데 거의 10여분 정도 밖에 안 걸린 것 같다. 디시 흙산의 길을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쉬엄쉬엄 계속 오른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니 동점재라는 푯말이 나온다. 앞으로 구재봉까지 2.2km 남았단다.
낙옆이 쌓인 흙산을 오르는 길은 걷기에 편하다.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도 앙상한 채 그대로이며 간간히 보이는 진달래나무는 조그마한 꽃망울을 맺고 있고 생강나무는 걷는데 지루함을 달려주려고 작정이나 한 듯이 노오란 꽃으로 반기고 있다. 생강나무야 고맙다 너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했겠나? 너의 노란 꽃을 보면서 힘을 내 열심히 산행을 하게 되어서 고맙구나! 산행을 하면서 우측으로 보면 섬진강과 평사리의 넓은 들이 보이며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훈풍인 봄바람으로 산행하는 맛을 돋우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구재봉(768m)이 800m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데 까마득하게 올라가야 한다. 구재봉을 향해 오르다 보니 많은 바위들이 보인다. 오늘 오른 산들은 대부분 흙산이어서 오르기 편안하였는데 정상에는 바위 덩어리들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구재봉(768m) 정상석에는 거북 구(龜)자와 비둘기 구(鳩)자가 앞뒤로 적혀있다. 구재봉의 바위형태가 보는 각도에 따라 거북이 형태로 또는 비둘기 형태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재정에 올라 멀리 지리산의 천왕봉과 광양 백운산 능선은 미세먼지로 희미하게 보여 거의 볼 수 없었으나, 마주하는 성재봉 아래에 있는 악양면의 최참판댁의 세트장과 파릇파릇한 평사리의 들판들은 희미하게나마 굽어보고,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면서 감회에 젖는다.
구재정을 뒤로 하고 가파른 하산 길을 재촉하여 활공장으로 향한다.
활공장으로 향하는 길도 흙산으로 걷기에 편하다. 구재봉을 오를 때 패러그라이딩이 힘차게 창공을 활공하던 모습이 보였으나 지금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그런지 트럭 한 대만 주차해 있을 뿐이다.
활공장에 앉아 주변경관을 사진에 담고 또한 악양면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앉아서 악양 들판과 섬진강과 멀리 산기슭에 피어 있는 매화꽃들을 보면서 상념에 젖는다. 만약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홍쌍리 여사의 매화농원과 경상도와 전라도민들이 넘나드는 화개장터 같은 곳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지척으로 보이는 미동. 개치방향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굵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솔향기가 짙게 나는 가파른 비탈길이다. 얼마를 내려가니 산 정상부근은 꽃망울만 맺혀 있던 진달래가 여기서는 활짝 펴 있는 것이다. 이르게 보는 진달래꽃의 모습!!!
이 광경을 보자마자 꽃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여인의 심리...
여성회원들은 꽃과 포즈를 취한다. 누가누가 더 예쁜가를 내기하는 것 같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진달래꽃이 여기저기에 피어 있다. 오늘의 따뜻한 날씨로 꽃들은 마냥 즐거웠던지 아침에 피우지 못했던 꽃망울들을 마구 터트리고 있다.
멀리서 보았던 평사리 들판과 동정호와 부부송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고 섬진강의 금빛 모래와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은 석양의 햇빛에 반사되어 아름다움을 선사하여 주고 있다. 늦게 시작된 오늘의 산행은 17.5km에 5시간이 소요된 오후 4시30분경에 마치게 된다. 어느덧 눈앞에 우리의 버스가 길옆에 서 있고 많은 회원들이 오부장님표 떡국을 열심히들 먹고 있다. (분당~산행지 :4시간30분, 산행지~분당 : 약6시간 소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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