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영장(靈長)산(414m)에 올라 시산제(始山祭)를 올리다
2014.3.30, 일. 맑음
시산제(始山祭)!!!
산(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산악회(山岳會)에서는 일 년에 한번은 산에 가서 산을 주관하는 신(神)(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기원(祈願)하고 싶어 하며 또한 기원(祈願)하기도 한다.
산에 가서 자신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기원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산행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잘못하여 산에 가서 기원하는 것을 빠뜨리고 넘어 갔을 때 사고가 났다고 가정하면 산에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바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한 부분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사람들의 역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은 문화. 문명이 발달하여 첨단장비로 실시간 날씨를 알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던 시절에는 하늘에서 천둥치고 번개 번쩍하면 하늘이 분노(忿怒)해서 그런 줄 알고 두려워하며 자연을 숭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옛날 우리조상들이 자연을 경배(敬拜)하던 시절의 마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를 때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산에 오른다. 특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산악회의 경우는 매번 산을 오를 때 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게 된다. 이 예상치 못한 일들을 우리들은 예측(豫測)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不安)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 버릴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이 바로 산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제사(祭祀)를 지낼 때 자신들의 정성을 담은 음식과 술을 가지고 산(자연)을 주관하는 신(神)에게 우리들의 소원(所願)을 빌게 된다. 그러고 나면 심리적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시기(時期)는 음력을 기준으로 하여 입춘(立春)이 지난 시점에 길일(吉日) 선택해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자신들이 속한 산악회의 안녕(安寧)과 번영(繁榮)을 가장 잘 지켜줄 수 있는 장소를 택하게 되는데 그런 곳은 이름 있고 신령(神靈)스럽고 영험(靈驗)이 많은 장소를 선택하여 지내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산에 가서 지내고 있는 시산제(始山祭)라는 것은 예전에는 없었던 문화였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죽었을 때 자신들을 태어남과 죽음을 주관한 자연(산)에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알리는 뜻으로 산신제(山神祭)를 지낸 후 자연 (땅속)으로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옛날 중국의 황제들은 자신들이 황제가 되었을 때 하늘에 제사지내므로 하늘에서 황제들의 절대적인 권력이 하늘에서 부여 받았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한 방편으로 봉선례(제사)를 태산이란 신령스런 장소에서 거행하곤 하였던 것이다.
이런 통치행위의 수단으로 이어져 오던 봉선례와 우리가 죽음으로 산(자연)으로 돌아갈 때 지내는 산신제 등이 결합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잇는 우리들은 산에 임하게 될 때 우리도 올 한 해 무탈하게 산행(山行)하게 하여 달라는 취지에서 처음 시(始)자를 사용하는 시산제(始山祭)를 거행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 반딧불이 산악회는 ‘영묘(靈妙)한 힘을 가진 것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지니며 신령(神靈)한 기운이 서린 뛰어난 산인 영장산(靈長山)’에서 시산제(始山祭)를 올리려 한다.
지난밤에는 봄비가 약간 내리고 , 새벽녘에는 하늘에 검은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 오늘의 시산제에 영향을 주지 않나 걱정했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도운 탓인지 청명(淸明)한 날씨다. 요즘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져 개천가의 개나리와 벚꽃이 활짝 피어 있다. 매우 화사한 봄날이다. 8시30분경에 야탑역 부근의 BYC건물 앞에 모인 반디회원들은 오늘 시산제에 쓰일 제물과 제사 관련 물품들을 십시일반으로 자신들의 배낭에 나누어지고 산행들머리인 전경대(戰警隊) 방향으로 이동한다. 시산제 장소인 영장(靈長)산은 414m로 해발은 높지 않은 편이나 그래도 산행하는데 나름대로 산행해 볼만한 곳이다. 영장산을 오르는 코스는 너무나 많다. 우리는 많은 코스 중 하나인 전경대(戰警隊) 입구에서 오르기로 하고 산행에 임한다.
산은 계절의 변화로 한창 옷을 갈아입고 있다.
붉은 진홍색으로 활짝 핀 진달래는 청명한 날씨로 더 고운 색으로 보이며 나무마다 파릇파릇한 새잎이 막 돋아나고 있다.
시산제를 올리려 가는 회원들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담소를 나누면서 산을 오르고 있다. 이곳은 분당에 거주하는 많은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휴일이고 아침운동 시간대라 많은 산행객들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한다. 아침 산행을 하고 내려오는 어떤 가족은 아들에게 김소월의 진달래라는 시를 들려주고 있는 모습은 정겨워 보인다.
영장산(靈長山:414m)은 맹산(孟山)이라고 불리던 산을 1999년 성남시 지명위원회가 고지도(古地圖)인 ‘신동국여지승남.광주부’에 영장산이라 기록된 것을 근거로 영장산이라 지명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당초 이산은 조선조 세종 때의 청백리(淸白吏)이며 명재상(名宰相)으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1360~1438)이 관직을 물러나면서 이 지역을 국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사패지지(賜牌之地)였다. 맹사성은 소탈함과 겸손함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전하는 일화(逸話)에 의하면 ‘젊은 나이에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문과 덕망이 높기로 소문난 무명선사를 찾아가 자신이 가져야할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물었다. 무명선사는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많이 하라고 답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을 말한다며 화를 내는 맹사성에게 무명선사는 차나 한잔하라더니 찻잔에 넘치도록 자꾸 찻물을 따르는 게 아닌가. 찻물이 넘친다고 말하니 ’찻물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느냐‘라고 무명선사의 반문에 맹사성은 얼굴이 화끈거려 도망치듯 얼어나 나가려다 문틀에 이마를 부딪치고 만다. 머리가 아파 쩔쩔매고 있는데 등 뒤에서 무명선사가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돌덩이에 불과한 불상에 몸을 숙이는 것도 세상을 겸손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다‘라는 깨달음을 주니 맹사성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호를 고불(古佛)이라 고치고 평생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로써 대하여 청렴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맹사성의 집안은 충남 아산 배방읍 중리에 있는 ‘맹씨행단(孟氏杏亶)에서 유래된다. 그곳에는 맹사성이 심었다는 600여년이 된 은행나무가 있어 행단(杏亶)이라 부르게 되는데 행단(杏亶)은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공부하던 자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것처럼 1388년(우왕14년)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따른 정란으로 최영장군이 죽음을 당한 이후 비어 있던 집에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정란을 피하여 이곳으로 거쳐를 옮겨 은거하게 되었고 그 후 이집은 맹씨 집안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맹사성은 최영장군의 손녀사위이며 최영장군은 이곳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이 처럼 영장산은 많은 일화를 간직한 산일뿐만 아니라 영장산(414m)을 기점으로 하여 학(鶴)이 좌우날개를 펼쳐 품고 있는 형태를 한 형상에서, 학의 품안에 해당하는 부분에 분당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산의 형상과 지맥을 손상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하므로 하늘에는 천당, 하늘 아래는 분당이라는 말이 돌듯이 신도시로 활기차게 발전하고 있다,
이 처럼 신령스럽고 영험한 영장산에서 시산제를 올리기 위해 우리 반디회원들은 영장산 정상 바로 밑에 제단을 설치하고 시산제를 올린다.
반딧불이 산악회 회장을 초혼관으로 시작한 시산제는 전 회원 각자가 자신의 가슴속에 담았던 소원들을 산신에게 빌면서 올 한 해도 무탈하게 산행할 수 있기를 기원하였으리라 본다.
마음속으로 노산 이은상시인의 산악인의 선서를 생각해 본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 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무사히 시산제를 마치고 준비한 음식과 술로 회원 서로간의 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으며 또한 이곳을 산행하는 등산객을 위해 많은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누며 서로 간 즐거운 덕담과 좋은 시간을 함께 하였다.
오늘로 799차까지 진행되어온 반딧불이 산악회가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하면서 아무런 사고 없이 계속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2014년 갑오년에도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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