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따라 걷는 길

치악산(雉岳山) 비로봉(毘盧峰:1,288m)을 오르며 보은(報恩)을 생각하다

미지부동산 2014. 3. 19. 15:55

치악산(雉岳山) 비로봉(毘盧峰:1,288m)을 오르며 보은(報恩)을 생각하다.

 

(2014. 3. 16, 분당: 맑음, 치악산: 맑음(미세먼지로 약간 뿌옇다)

 

보은(報恩)!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우선 부모님의 도움으로 태어나서 성장하게 된다. 성장하면서 혼자만 살아 갈 수 없고 남과 어울리며 함께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사회공동체에 몸을 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남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물질적인 면이나 혹은 정신적인 면에서 감사함을 표시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이 감사함이 즉 보은(報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보은(報恩)의 고장 원주 치악산(雉岳山) 비로봉(毘盧峰:1,288m)을 오르려 한다.

 

치악산은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산맥의 줄기로서 영서지방의 명산이며, 원주의 진산으로 남북으로 웅장한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주봉인 비로봉(毘盧峰:1,288m)을 중심으로 향로봉(香爐峰:1,043m), 남대봉(南臺峰:1,182m)과 북쪽으로 매화산(梅花山:1,084m), 삼봉(三峰:1,073m) 등 남북으로 천 미터 이상의 고봉으로 14km나 뻗은 능선으로 연결 되며, 그 사이로 깊은 계곡을 끼고 있다. 또한 능선을 경계로 하여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은 완경사다. 특히 비로봉에서 구룡사를 향하여 뻗은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르다. 고둔치 동쪽인 부곡리 산막골 일대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대를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 흐르는 계곡들은 섬강(蟾江)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주천천(酒泉川)으로 흘러든다.

 

치악산의 앞글자인 치자가 꿩치(雉)자를 쓰고 있다.

많고 많은 글자 중에서 왜?

하필이면 꿩 치(雉)자를 사용해서 치악산(雉岳山)이라고 하는지?

“원주시 신림면 성황림 솟대공원”의 조형물에 새겨진 설화에 의하면

“한 젊은이가 무과시험을 보러가던 중 꿩 소리가 요란하여 근처를 보니 구렁이가 꿩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다. 어미 꿩은 어찌할 바를 몰라 왔다갔다 하면서 유인책을 쓰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 젊은이는 화살로 큰 구렁이를 쏴죽이고 새끼 꿩을 구해준다. 꿩을 구해주느라 시간을 지체한 젊은이는 날이 어두워져 산속 기와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주인의 따뜻한 배려로 저녁을 배불리 먹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가슴이 답답하여 보니 큰 구렁이가 젊은이를 칭칭 감고 하는 말이 ‘낮에 죽인 내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고 한다.’ 살고 싶으면 저 산위 빈 절 종각에 있는 종을 세 번 울리게 하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젊은이는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낙담하는 순간 어디선가 땡~ 땡~ 땡~ 세 번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구렁이는 나도 전생에는 사람이었는데 욕심을 많이 부려 구렁이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너를 죽이지 못해 한스럽지만 하면서 사라진다. 목숨을 구한 젊은이는 종각에 올라보니 종각 밑에 꿩 세 마리가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다.

그 빈 절이 바로 지금의 상원사이며 그 때까지 단풍잎이 아름다워 붉을 적(赤)자를 사용하여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리던 것을 보은(報恩)을 한 꿩치(雉)자를 넣어 치악산(雉岳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날 짐승인 꿩이 보은(報恩)한 지역인 원주 치악산을 오르기 위해 분당을 출발한 지 1시간 50분만인 09시경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치악산 입구인 황골에 도착한다. 산행대장이 오늘 산행코스에 힘이 드는 분은 반대 방향인 구룡사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힘에 맞게 산행하라고 한다. 한 여성회원을 제외한 나머지 회원들은 예정산행코스로 산행한다. 산행하면서 모든 계단이라 계단은 다 체험할 것이라(즉, 나무, 돌, 철, 로프 등)하며 안전산행을 당부한다.

 

산행코스는 황골 → 입석사 → 황골삼거리 → 비로봉 → 사다리병창 → 세렴폭포 → 구룡사 → 매표소 → 주차장으로서 약 11.1km에

5시간 30분 소요될 예정이다.

 

산행들머리인 황골에서 바라본 치악산의 전경은 수많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서 어디 한번 쳐들어오고 싶으면 쳐들어 와 봐라 하는 것처럼 웅장한 산군(山群)들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그런 틈새로 난 계곡을 따라 위로 오른다. 계곡입구에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도로 양 옆에 들어서 있고 조금 위로 올라가면 전원주택들이 산의 형세와 조화를 이루며 지어져 있다.

 

황골에서 1,288m인 비로봉 정상까지 5.4km 밖에 안 된다 것은 계속 오르막이면서 급경사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 산행코스가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까지 최단거리 코스인 것이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계곡에서는 봄이 왔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시원스런 물소리가 들린다.

지난해 무척이도 내렸던 눈들이 녹아내리고 있는 소리인 것이다.

황골탐방지원센타를 지나 위로위로 오른다. 벌써 많은 산행객들이 내려오고 있다. 이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침 산행을 갔다 오는지 얘들과 함께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부지런들 하시지...

 

우리 반디회원들은 어디 갔는지 구경하기 힘들다. 산에만 가면 마치 경주마처럼 질주본능을 보이는 것 같다. 열심히들 오르고 있다.

어떤 회원은 오르면서 무척 힘들다고 한다. 세월이 갈수록 산에 오르는 것이 힘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잘 오르고 있다.

계곡의 물소리가 함께 산행하는 동반자처럼 따라오면서 무언가 재잘재잘 거리고 있는 것이 마치 힘드냐고 묻는 것 같다. 처음 시작이라 힘이 들더라도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니 천천히 올라가라고 하면서 다독이는 것 같다.

 

아스콘으로 포장된 도로가 끝나갈 즈음에 입석사(立石寺)에 도착한다. 바로 옆에 거대한 입석대(立石臺)가 있다.

이곳은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선생을 위해 태종 이방원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선생은 태종 이방원의 한때 스승이었으나 고려가 멸망하자 이곳 치악산 밑에서 은거하면서 여생을 마친 절개 있는 고려의 선비였다.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된 후 선생에게 여러 번 출사할 것을 권했으나 거절하였으며 왕이 이곳을 친히 방문하였으나 만나주지 않고 피했다고 하며,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선양(물려준 후)한 후 백의(白衣)을 입고 한양에서 태종을 만났다고 한다.

조선의 유명한 학자 미수 허목(許穆)은 “ 군자는 숨어 살아도 세상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선생은 비록 이 세상을 피하여 스스로 숨었지만 세상을 잊은 분이 아니었고 변함없이 도를 지켜 그 몸을 깨끗이 하여 백대(百代)의 스승이 되었다”라고 칭송하였다.

현재도 우리에게 회자되는 시구(詩句)는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붙었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라며 고려가 망함에 대한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입석사(立石寺)의 위치는 좁은 계곡에 자리 잡았지만 그리 답답하지 않게 느껴진다. 거대한 입석대(立石臺)는 마치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선생의 기개와 절개를 의미하는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운곡선생의 기개와 굳은 절개도 필요한데 너무 이익에 의해 조석(朝夕)지변으로 변하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운곡선생의 절개를 생각하면서 입석사를 떠난다.

입석사에서 황골갈림길까지 2.5km는 지금까지 보다도 경사가 더 급한 오르막이다. 오르는 중간 중간에 힘이 드는지 쉬어가는 산행인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 반디회원들도 오르면서 힘이 들면 조금씩 쉬어가면서 오른다. 잠깐 휴식은 힘든 육체에 감로수를 제공하는 것 같다. 연세든 고문님이 휴식을 취하면서 엿 먹자고 한다. 엿 맛은 진짜 꿀맛이다. 부부회원이 방울토마토를 꺼내놓는다. 다들 맛있게 먹는다. 그 많던 양이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이 사라진다. 산에 오르면 모두들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다.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따뜻한 기온 탓으로 얼었던 산행길이 녹아 질척인다. 양지쪽은 거의 눈이 보이지 않고 봄의 기운을 받은 나무들은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 같은데, 음지의 경사면에는 아직도 잔설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산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시야에는 잡목들만 보인다. 큰 잡목들 사이로 낮게 엎드려 자라고 있는 조릿대는 한 겨울의 모진 풍파와 눈속에 파묻혀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주변의 경관들을 조망하며 위로 계속 오른다.

원주시 전경을 전부 조망할 수 있다는 쥐너미고개에서 앞의 탁 트인 공간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온통 뿌옇게 보일뿐이다. 날씨는 맑았지만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로 멀리 조망할 수 없다. 멀리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다만 마음속으로 원주시의 전경을 조망하면서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비로봉(1,288m)을 향해 오른다. 얼마쯤 오르니, 비로봉 정상 300m 못 미친 따뜻한 양지쪽에서 먼저 올라온 일행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함께 먹고 가자고 한다. 정상에서 먹겠다고 하며 계속 오른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몇 십 미터쯤 살짝 아래로 내려왔다가 위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이곳에는 얼음이 녹지 않아 빙판인데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이 든다. 말이 300m지 무척 힘이 든다. 차라리 점심을 먹고 올 것 하고 생각도 한다.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니 배도 고플 때도 되었다고 본다.

산악인들이 정상을 바로 코앞에 두고 정복하지 못하고 하산하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드디어 비로봉(1,288m)정상에 오른다. 치악산 비로봉(1,288m)에만 있는 세 개의 돌탑들과 만남의 인사를 나눈다. 신선탑 옆에서 함께한 일행들과 점심을 먹으며 산행의 즐거움에 대해 담론을 주고 받는다.

 

여기 비로봉 정상에 있는 미륵돌탑은 ‘용창중’이란 한 개인의 지극정성에 의해 쌓았다고 한다. 용왕탑. 신선탑. 칠성탑의 3기로서 치악산을 상징하는 대표 명물이 된 것이다. 만약 이곳에 세 개의 돌탑이 없다면 무미건조할 것이며 이 돌탑으로 인해 이 산을 오르는 각자에게 자신만의 꿈과 희망을 심어 줄 것이라 본다.

 

돌탑과의 짧은 재회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사다리병창방향으로 하산한다. 내려가는 방향은 음지쪽에다 눈이 녹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꽁꽁 얼어 있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으면 내려가기 힘들 것이다.

아주 급경사다. 철계단으로 되어 있으나 눈이 얼어서 계단의 구분이 안 된다. 급경사의 얼음 빙판으로 썰매타면 아래까지 그냥 내려갈 것 같다. 조심 조심하면서 로프나 철 난간을 잡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다. 가끔씩 등산장비를 갖추지 않은 젊은이들이 올라오고 있다.

젊은이들을 보면서 올라갈 때는 로프나 주변 나간이나 나무들을 잡고 오를 수 있다고 보지만 내려갈 때가 걱정스럽다.

이 지역 의대에 다닌다는 젊은이 3명이 바닥이 미끄러운 신발을 신고

단순한 복장으로 올라온다. 걱정스럽다. 조심하면서 내려간다.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겹치게 되니 얼굴 표정들이 불안해 보인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씩 올라가고 내려가자고 한다.

 

함께한 일행 한 분이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하산하는데, 거의 곡예하는 것 같다. 무척 힘들어 보인다. 아주 조심조심하면서 내려온다. 아마 팔 다리가 많이 아플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힘을 쓰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일행과 보조를 맞추면서 내려오다 보니 벌써 사다리병창이다. ‘병창’은 이곳 언어로 벼랑, 절벽이란 뜻이다.

이곳까지 내려오면서 각종계단들(나무. 돌. 철. 로프 등)을 체험하면서 내려왔다. 사다리병창을 벗어나니 얼음길이 자취를 감췄다. 이제부터는 편하게 하산한다. 누군가의 아이젠 한 쪽이 등산길에 떨어져 있다. 주워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내려간다. 함께하는 일행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아래로아래로 내려간다.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난다. 많은 사람들이 계곡의 물가에 앉아서 무언가 하는 것 같다. 그 중에는 우리의 반디회원들도 보인다. 눈 녹은 계곡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근다. 온 몸에 찬 기운이 돈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는데 감각이 없어진다. 재빨리 물에서 나온다. 어이~~ 발~ 시려 하며 호들갑을 떨어 본다. 그러면서 서로들 맑은 물에,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와 가슴속에서 쌓여 있던 마음의 먼지들을 깨끗이 씻어낸다.

갑자기 아이젠을 씻던 연세든 고문님께서 아이젠 한쪽이 없어졌다고 하며 본적이 없느냐 한다. 그래서 그곳에 잘 보이는 곳에 나두고 왔다고 하였더니 아직 하산 중에 있는 회원에게 연락한다.

내려올 때 아이젠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한다. 우리일행들의 것인 줄 알면 가지고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하산한다.

 

구룡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 양옆에는 조선시대에 궁궐 목재용으로 사용하는 금강송과 전나무, 잣나무 등 많은 침엽수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고 있다. 쾌적하다.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다. 알고 보니 피톤치드라는 것이 침엽수림에서 많이 방출되기 때문에 쾌적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가 많이 발생하는 탐방로를 따라 내려오니 구룡사가 나타난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아홉 마리 용과 도술시합을 벌여 이겨서 용이 머물던 연 못을 메워 구룡사를 창건한 절이라고 창건설화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상상의 동물인 용과 대웅전의 조그만 터에 어떻게 연못이 있었을까 하고 의구심을 많이 가질 것이다. 대웅전 터를 자세히 보면 이곳에 연못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산의 능선 끝자락을 깎아 만든 곳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물의 특성상 물은 절대로 산을 넘을 수 없는 것이 물의 특성이다. 그러니 어떻게 연못이 생길 수 있겠는가?

이 당시는 풍수지리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선덕여왕시기의 자장율사에 의해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 당시 일반백성들에게 좋은 장소라는 것을 알리는 방법의 한 수단으로 불심이 깊은 의상대사의 인품으로 연못에 있는 용과 도술시합을 벌여 승리한 곳이므로 많은 백성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많은 효염을 볼 것이라 믿게 하였던 것 같다.

 

구룡사의 창건설화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개울가에 설치된 탐방로를 따라 매표소 방향으로 걷는다. 어디선가 개굴개굴하는 소리가 들린다.

봄은 왔건만 마음속은 아직 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치악산의 구룡사 따라 난 탐방로에서는 완연한 봄을 느끼는 것 같다.

따뜻한 봄기운에 못이겨 한 잔의 막걸리를 겸하게 되니 마음속에 얼었던 겨울은 어느덧 저 멀리 가버린 것 같다.

 

한잔의 술을 먹으며 치악산에 담긴 뜻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치악산에는 왜? 꿩치(雉)자를 사용하며 꿩에 대한 보은의 설화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날짐승인 꿩조차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보은(報恩)을 하는데....

우리인간에게는 과연 보은(報恩)의 의미는 어느 정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