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금학산(947m)과 연천 고대산(832m)에 올라 북녘 땅을 바라보다
2014. 3. 9. 일, 분당 : 아침 눈, 철원 : 맑음
지난 밤 일기예보에 경기북부지방에 폭설예비주의보가 내렸다.
비록 하늘은 흐렸지만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내일은 경기 연천. 철원지방에 있는 금학산(947m)과 고대산(832m)을 오르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막상 새벽 5시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주위는 온 통 하얗게 변하여 있고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경기 남부인 분당에 이 처럼 눈이 많이 내리고 있는데 경기 북부인 연천과 인접한 강원도 철원의 경우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많은 눈이 내렸을 것으로 생각하니 걱정된다.
오늘 등정하기로 되어 있는 금학산과 고대산은 가파르고 바위가 많은 산이라 눈이 올 경우 미끄러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눈이 오면 시야가 흐려져 멀리 조망할 수 없다.
금학산과 고대산에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분단된 국가인 한 반도의 분단된 현실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DMZ를 볼 수 있는 곳이며,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저 북녘 땅인 철원 평야가 지척에 있는데 갈 수 없다는 가슴 아픈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전쟁 중 10여 일간의 12번의 전투에서 24번이나 고지를 뺐고, 뺐기는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는데 까치는 눈이 와서 기분이 좋은지 자신들만의 언어로 얘기하고 있다. 또한 나한테 인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지난 2주 동안 중국 운남성의 옥룡설산을 벗 삼아 차마고도를 트레킹한 관계로 반디 산악회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3주만에 참석하게 된다. 낯익은 얼굴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버스에 올라 오늘의 목적지인 철원지방으로 향한다.
차창 밖은 온 통 하얀색이다.
계절은 춘삼월인데...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날씨는 춘래불사춘(春來不思春)이란 말을 생각하게 한다.
봄은 왔지만 아직 마음속에서는 봄을 생각할 수 없게 하구나!
버스는 강동대교를 지나 경기 북부지역인 남양주 진접 신도시에 접어든다. 그런데 정작 폭설예비주의보가 내렸던 이 지역은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커녕 하늘에는 붉은 태양이 비추고 있다. 어찌된 영문이지 알 수 없다.
포천베어스타운을 지나 조그마한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다.
산행을 위한 많은 관광버스가 함께 주차장에 들어온다.
아침 일찍부터 상점들은 분주하다.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산행객들을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여성용 화장실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용변이 급한 여성은 체면불구하고 남성용 화장실을 파고든다.
포천과 가평 간 삼거리에서 한 회원이 탑승한다. 모두들 방가방가한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 덕택에 버스는 빠르게 철원지방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지역은 전혀 눈이 내리지 않았던 것 같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약간 빗나간 것 같게 보인다. 하늘의 뜻을 어찌 다 정확하게 맞힐 수 있겠는가? 신도 아닌데...하며 자조한다.
맑은 날씨 덕분에 한 반도의 분단된 현실을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버스는 어느 덧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철원여고 입구에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인 09시10분경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철원여고 → 매바위 → 얼굴바위 → 금학산정상(947m) → 고개(대소라치) → 보개산(752봉) → 고대산 정상(832m) → 3코스 → 표범폭포 → 매표소로 11km에 산행시간 5시간 소요예정이다.
산행대장이 오늘의 가장 힘든 코스는 금학산(947m)정상까지 오르는 것이라고 한다. 09시20분경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항상 산을 오르면서 생각나는 말 ‘산은 오르기 힘들다는 것’
오를 때 마다 쉽게 산을 오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렵고 힘들게 정상에 오르는 순간의 희열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 같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힘들게 산을 오르고 있다.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철원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올라가면 갈수록 더 멀리까지 볼 수 있어 자꾸만 위로위로 올라간다. 오늘 산행에는 반디회원 중 최고령이신 82세의 현역인 고문과 함께 산행하고 있다. 82세란 나이가 어울리지 않게 힘든 바위산을 잘 오르시고 있다. 너무나 감탄스럽고 존경스럽다.
이런 분과 함께 산행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월이 흘러 내 자신이 82세란 나이에 젊은이들과 함께 산행을 할 수 있게 될 수 있을런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과연?
다만 긍정적으로 그리고 밝게 열심히 사는 방법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다. 위로 오르다보니 우뚝 솟은 바위가 나타난다. 매 바위인 것이다. 주변에는 여타 바위 없이 유아독존격으로 우뚝 솟은 매 바위는 철원평야에서 부는 그 어떤 나쁜 기운으로부터 철원지방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매 바위에서 철원평야를 배경삼아 자신의 존재감을 표시하는 증표를 남기고, 다시 가파른 길을 재촉한다.
눈은 대부분 녹았지만 등산길에는 얼어붙은 얼음으로 매우 미끄럽다. 때로는 흙과 먼지 갈잎 등으로 덮여 있어 잘못 밟았다가 크게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겨울 등산은 항상 안전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이럴 때는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오르면 오르기 훨씬 쉬워진다. 사람들은 때로는 자만심으로 그냥 아이젠 없이 오르려고 하는데 한번 실수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다른 동료회원들에게 산행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사 만사불여튼튼이란 말처럼...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철원시내와 철원평야가 조금씩 조금씩 더 멀리까지 잘 보인다. 오르다보니 예전에 사용했던 군사용 벙커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거창한 공중화장실이 나타난다.
이런 산꼭대기에 웬 공중화장실...
아마 군인들이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휴일에는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금학산 정상부근에서는 이 지역 거의 모든 곳을 조망할 수 있다. 먼저 올라온 반디회원들은 따뜻한 양지쪽에 몇 개의 그룹으로 옹기종기 모여 이른 점심을 먹고 있다.
헬기장 좌측 금학산(947m) 정상에 올라 나도 이곳에 왔었다는 증표로 사진으로 남긴다. 함께 올라온 몇몇 회원들과 군사용 벙커 뒤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미리 선점하여 식사하는 회원들과 합류하여 이른 점심(11:00)을 함께한다.
등산의 맛은 아마 힘들게 산행한 후의 식사 때가 아닌가 한다.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하면서 철원평야에서 군대 시절에 자신들이 겪었던 무용담으로 서로 갑론을박하기도 하고 어떤 회원님은 젊은 시절 한전에 입사하여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각 가정에 전기 계량기를 달아주면서 겪었던 일화들을 들려주기도 한다. 너무나 값진 얘기들이다.
이런 분들도 세월이 가면 이곳에서 겪었던 일화들을 가슴에 묵고 영원히 사라지게 되면 이 철원평야의 DMZ 부근에서 있었던 일들을 후손들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금학산은 학이 막 내려앉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궁예가 901년 태봉을 건국한 후 이 곳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도선이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년은 통치할 수 있고, 고암산을 진산으로 하면 25년 밖에 국운이 가지 못한다고 예언하였다는 일화가 있으나,
도선은 827년 태어나 898년 사망하였으며, 궁예가 901년 국호를 후고구려라 칭하며 나라를 건국한 이래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변경하고 905년 청주인 1,000호를 철원에 강제로 이주하여 도읍으로 정한 후 911년 국호를 다시 태봉으로 변경한다.
금학산은 정상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펼쳐진 산의 형태이기 때문에 대궐을 북향으로 짓는다는 것은 당시의 정서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어떤 호사가가 궁예의 철원도읍지로서 통치기간이 너무나 짧아 아쉬워서 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정설인양 굳어져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금학산(947m)정상에서 멀리 철원평야를 바라보니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곳이 DMZ이고 띄엄띄엄 흰 구축물이 보이는 곳이 GP(군초소)라고 한다. 이제는 분단되어 60여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 DMZ도 세계자연유산으로 보호하자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가슴 아프고 뼈아픈 고통과 시련의 현장인 것이다.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그날의 역사의 현장을 ... 또 잊어서도 안 되고 그때의 교훈을 길이길이 가슴속에 담아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런 비극의 역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한다.
금학산(947m)을 뒤로하고 다시 경기도 연천군에 속하는 고대산(832m)으로 향한다. 고대산을 가기 위해서는 금학산 정상에서 해발 200m 정도를 아래로 내려온 후 다시 올라가야 한다. 내려오는 도중 초병을 만난다. 초병은 이곳에 설치된 군시설을 관리하고 있는 듯싶다.
이곳 철원 날씨는 바람이 매섭다. 찬바람이 때로는 가슴속까지 파고든다. 바람이 안 불면 더워지고 바람이 부는 곳은 춥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내려오는 중간 중간에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많은 글들이 보인다. ‘항상 웃어라. 일어나자마자 웃어라. 억지로라도 웃어라 병은 무서워서 도망간다.’ 웃음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 가파른 산등성이를 매일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힘이 들것이다. 그때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항상 웃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즐거워지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것도 즐거워지는 것이다.
인생사일체유심조(人生(事一切)唯心造)라 하지 않던가! 즉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른다는 것이다.
대고라치 고개에 당도하니 예전에 군사훈련용으로 사용하던 시설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것은 아직도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해발 200m 이상 내려온 후 다시 고대산(832m)으로 향한다. 고개에서 처음 오르는 길은 육산으로 비록 가파르다고는 하여도 걷기에 편하다. 함께 산행하던 산행대장이 무전으로 후미대장을 부른다. 어디쯤 왔느냐 한다. 금학산 정상에서 식사하고 내려오려 한다고 한다. 한 여성회원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산행하는데 무척 힘들어 하는 모양이다. 후미 대장이 책임지고 함께 산행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무전으로 건강상태와 산행을 완주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만약 건강이 여의치 못하다면 대고라치 고개에서 철원시내 방향으로 하산한 후 택시나 버스로 우리의 산행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신탄리역으로 와야하는 불편함이 따르고 또한 택시의 경우 5만원 정도의 경비가 소요된다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함께 산행하는 회원들은 힘이 들더라도 끝까지 완주할 것을 후미대장에게 연락한다.
우리일행들은 위로위로 계속 오른다. 보개산(752봉)에 올라 주변을 보니 이 지역 주변을 거의 다 조망할 수 있다. 오늘은 고개만 우측으로 약간 돌리기만 하여도 철원시내와 멀리 철원평야와 갈 수없는 북녘의 땅들을 원 없이 본다. 보개산에서 뒤돌아 본 금학산의 전경은 한 마리의 학이 남북방향으로 땅에 내려앉기 위해 나래를 퍼득이면서 앉으려는 형상이다. 또한 높은 산을 많이도 내려와서 다시 올라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바로 앞에 웅장한 종자산(種子山:642.9m)이 남쪽방향에서 떡 버티고 서 있다.
고대산에서 비박했다는 2명의 여성 산악인은 금학산으로 가는 등산로의 상태를 묻는다.
다시 고대산으로 향한다. 음지에는 얼음이 그대로 있어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어떤 회원은 아이젠도 없이 걷다가 미끄러지기도 한다. 옆에서 보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갈림길도 나오고 산을 파헤쳐 만든 헬기장도 나온다(구 헬기장표시). 고대산이 지척에서 보인다. 등반객이 정상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함께하는 여성회원이 힘든 모양이다. 오르면서 잠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한다. 조금만 가면 고대산 정상이니 참으라고 하면서 함께 오른다. 드디어 고대산(832m)정상에 오른다. 주변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늦은 점심을 먹느냐 부산을 떨며 왁자지껄한다.
고대산 정상 표지석에는 내가 이곳에 왔노라는 인증 샷을 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린다. 이 고대산(832m)에는 북한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최북단의 위치라고 한다. 안내표지판에는 백마고지 봉래호 철원평야 월정리역 태봉국 도읍지 평강(평강역) 노동당사 동송저수지 학저수지 한탄강의 위치와 간략한 설명이 곁들여 있다.
휴전선(DMZ)부근에 있는 백마고지는 근대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얼마나 많은 포탄과 총탄이 퍼부었으면 산은 온전한 구석이 하나도 없이 대머리 민둥산이 되었겠는가? 10일간의 전투에서 17,000여명이상의 사상자를 내면서 12차 전투에서 24번 뺐고 뺐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끝까지 백마고지를 사수하겠다는 육탄삼용사(강승우소위. 오규봉하사. 안영권하사)의 우국충정의 정신이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빗발치는 총탄속을 헤치고 고지정상으로 내달아 적의 기관총을 박살내고 장렬히 산화하여 지켜낸 백마고지!!!
이곳에서 산화한 수많은 영령들이 아직도 그때의 참화의 현장을 떠돌면서 울부짖고 있을 것이다.
왜???
아직도 그 당시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빨리 남북이 통일되어 우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에서 울부짖고 있을 영령들을 달래기 위해서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야 할 것이다.
고대산(832m)을 내려오면서 가고 싶어도 갈 수없는 북녘땅은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져간다. 60년 전의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인 휴전선(DMZ)을 마음속에 담고 아린 마음을 달래면서 하산한다. 흙먼지나 낙엽으로 감추어져 잘 보이지 않는 얼음을 조심조심하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 잡목으로 이어지는 숲을 따라 오다보니 표범폭포에 대한 안내 표시가 나타난다. ‘고대산 3등산로 하단부에 위치한 표범폭포는 우뚝 솟은 주변암반의 문양이 마치 표범문양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시원한 폭포소리에 잠시 쉬어가기 안성 맟춤이다’ 라고 되어있다. 여름에는 아마 시원한 물소리가 산행하는 이들을 잠시 쉬어가게 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하얀 얼음으로 덮여있다. 조금 아래로 내려오니 고대산 약수터가 있다. 약수를 받으러 온 등산객이 거나하게 취해서 하는 말은 이물을 먹으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물바가지로 한잔 가득 담아 한숨에 들이킨다. 속이 시원하다. 오늘 산행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이 한잔의 약수로 갈증을 해소되길 바라면서...
“여기 자유의 제단에 피의 제물이 되신 세 군신을 보라
그들은 짧은 인생을 바쳐 조국과 함께 영원히 살았다.
거룩한 우리 국토를 전쟁터로 만든 악랄한 공산도배들
그들과 싸우며 피로 물들인 백마고지!
한 줌의 성한 흙이 없고 한 덩이의 옹근 바위가 없이
그토록 처절했던 포성과 포연 속에 쓰러진 젊은 혼들이
오히려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울려 하나니
아 거룩하여라! 아름다워라!
그대들의 희생과 높은 뜻이여
우리도 그 충정 그 신념 본받아 앞날을 바로 잡아
천추만대에 부끄럼 없는 새 역사를 지으려고“
육탄삼용사에 대한 이은상의 추모시을 생각하면서 공원에 주차하고 있는 버스에 도착한다. 이곳에 추차하고 있는 여러 대의 버스 옆에는 산행뒤풀이를 하느냐 시끌벅적하다. 애주가들은 한 잔의 술로 인해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뒤처졌던 후미가 도착하므로 오늘의 산행은 즐겁게 무사히 잘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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