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따라 걷는 길

일월산(日月山:1,219m)에 올라 동해(東海)를 바라보다

미지부동산 2014. 5. 20. 12:17

일월산(日月山:1,219m)에 올라 동해(東海)를 바라보다

(2014.5.18. 일 , 분당: 맑음, 일월산: 맑음)

해와 달이 가장 먼저 뜨는 일월산(1,219m)...

동해의 해 뜨는 광경과 달이 온 산을 가장 먼저 비췬다는 일월산을 오르려고 대한민국에서 오지 중 오지로 알려진 경상북도 영양군과 봉화군의 경계에 있는 해발 1,219m인 일월산을 향해 떠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의 이천지역을 지나면서 차창 밖의 들판에는 벌써 모내기가 끝나, 모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산천에는 녹음이 더 짙어져 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세월이 가고 있는 것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 중순 즈음이면 이 아름다운 계절의 묘미를 즐기려는 상춘객으로 도로에는 차량의 행렬로...

산야에는 봄을 만끽하려는 상춘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막힘없이 차량은 달리고 있다.

마치 초상 맞은 분위기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2014. 4. 16,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한국사회 전체가 초상집이다.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우리가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 이웃나라인 중국은 서해안에 난입하여 불법조업을 일삼고 있으며, 일본은 침략의 야욕을 더욱더 불태우고 있다.

세계는 겉으로 남의 나라의 아픔을 위로 해주는 척 하며, 속으로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인생사 일체 유심조(인생(人生事 一切 唯心造)’란 말과 같이 마음의 상태가 어떠 하느냐에 따라 주변의 사물을 바라보는 것도 밝게 보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어렵고 감내하기 힘들다고 하여도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이고 그 아팠던 시련의 순간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엷어져 종국에는 잊혀져가게 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란 국가적 재난을 당하여 전 국민이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인재에 의한 것이므로, 이성을 잃는 분노보다는 앞으로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가슴속에 새기어야 할 것이다. 너무나 감내하기 힘든 대가이지만 이것을 계기로 앞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만 된다고 본다.

고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할러면 살아있는 자들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하루 빨리 원상회복하여 국민들 마음속에는 열심히 살아야 할 꿈과 미래가 있어야 하고, 예전처럼 열정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보니 벌써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단양을 지나 풍기로 접어드니 사과와 인삼의 고장답게 차창 밖으로 사과밭과 인삼밭이 시야에 들어온다. 풍기IC에서 나와 36번 국도에 접어든다. 말이 국도이지 4차선으로 포장된 도로는 고속도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모내기가 늦어지는지 한창 모내기에 바쁘다. 봉화군 봉성면, 법전면을 지나니 울진 태백으로 향하는 표지판과 함께 35번 국도로 연결된다. 35번 국도가 끝날 즈음 2차선인 31번 국도로 진입한다.

여기서부터는 개울 따라 구불구불 난 도로를 하염없이 달린다.

바닥이 다 보이는 맑은 물과 녹음이 짙게 드리운 산기슭의 전경과 군데군데 있는 농가주택은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하늘아래 첫 동네인 이들 지역은 농사짓고 살기에는 너무나 척박하여 삶이 무척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보니 일제 강점기에 만주지방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던 주민들도 이 지역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또한 지금은 이렇게 도로가 나 있으니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시절에는 평생 태어나서 이곳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개울은 어느덧 계곡으로 변하더니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수목이 울울창창하다.

봉화터널을 지나는가 싶더니 영양군으로 접어들어 영양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일월산 정상(1,219m)이 멀리서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윗대티로 산행버스가 가야하나 바로 꺾을 수 없어 아래 대티로 가서 꺾어서 온다. 겨우겨우 좁은 길로 접어들어 윗대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은 낙동강지류인 반변천이 시작하는 곳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반긴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윗대티 → 쿵쿵목이, 일월산 4.1km/2:20분 → 월자봉 1.7km/30분 → 일월재~동화재 3.5km/1:40분 → 추자봉~찰당골 3.0km/1:30분으로 산행시간; 약 12.3km/6시간 소요될 것으로 예상(B코스; 월자봉~천화사1.7km ~도로2km 찰당골 4시간20분예정)하여 출발하였으나 첫 출발지인 윗대티에서 능선 따라 일자봉으로 오르려고 하였으나 첫 출발지를 잘못 인식하여 능선이 아닌 골짜기로 향하게 된다.

첫 출발지인 입구를 잘못 잡아 출발하였지만 계곡으로 오르게 되어 산행하기에는 오히려 쉽게 오르게 된다.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어가면서 오르니 비록 약간 덥긴 하지만 옆에 흐르는 물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것 같았다.

 

 

오르다보니 어디선가 향긋한 더덕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일월산은 5.16 ~ 18일인 오늘까지 산나물 축제를 이곳 정상부근인 쿵쿵목이에서 진행하고 있다.

축제에 참가한 많은 산나물꾼과 산행객이 함께 어울러져 산행하고 있는 것 같다.

계곡 따라 한 시간 정도 위로 올라갔을 때부터는 가파른 비탈길이다.

12시가 넘으니 배꼽시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배도 고프고 가파르기도 하고 힘이 무척 든다.

중간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회원의 무전기에서는 아픈 환자가 있으니 함께 온 일행을 찾는 메시지가 계속 전달된다.

계속 위로위로 오른다.

오르다보니 오른쪽으로 월자봉0.4km와 왼쪽으로 일자봉1.4km란 표지석이 나온다.

처음 출발이 잘못되어 1.4km를 더 걸어야 하는 것 같다.

계곡으로 쉽게 올라왔으니 그만큼 값어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일자봉으로 가는 1.4km구간은 호젓한 산길로서 고산식물군이 자라고 있어서 마치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씩 철지난 철쭉꽃이 반기니 더욱 상쾌한 기분이 든다.

멀리 남쪽으로 시야가 훤히 트여있어 하늘과 맞닿은 산 능선을 감상한다.

가는 도중 만난 일행 한 분은 갔다가 다시 와야 하기 때문에 그냥 바로 월자봉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되돌아간다. 우리 일행 뒤를 따라오던 몇몇 회원들과 합류하여 월자봉에서 일월재 찰당골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드디어 일자봉에 도착하니 많은 산행객들이 점심을 즐기고 있다. 개중에는 산나물축제에 참가한 나물꾼들은 한 보따리의 나물들을 들고 왔다 갔다 한다.

선두그룹으로 온 반디회원들은 한창 식사중이다. 일행들과 합류하여 허기진 배를 채운다. 배가 부르니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벌써 1시가 넘어선다. 아침 6시 조금 넘어 식사하고 이제야 밥을 먹으니 배고픈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괜히 배보고 식충이라 야단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월산 정상인 일자봉(1,219m)에는 커다란 ‘일월산’이란 글과 뒷면에는 이 지역 출신 문사인 이문열님의 일월산을 기리는 글인‘일월송사(日月頌辭)’가 적혀있다.

‘곤륜(崑崙)의 정기가 해 뜨는 곳을 바라 치닫다가

백두(白頭)대간을 타고 남으로 흘러 동해 바닷가에

우뚝한 영산(靈山)으로 맺히니 이름하여 일월산(日月山)

해와 달을 아울러 품은 넉넉한 자락은 그윽한 옛 고을

고은(古隱)을 길러내고 삼엄한 기상은 거기 깃들어 사는

이들에게 매운 뜻을 일깨웠다.

세상이 평온하면 이 땅 가득 지혜와 영감의 향내를 피워

내다가도 나라가 치욕을 입으면 비분에 찬 은사(隱士)들의

수양산(首陽山)이 되거나 죽기로 맞서는 지사(志士)들의 마지막

베개와 무덤이 되었다.

이제 옛 고은(古隱)은 문향(文鄕) 영양(英陽)으로 자라

새로운 천년을 마주하고 섰으니

아아, 일월산이여

그 기상 그 자태 바뀌고 다함이 없으라

우리 영양과 더불어 길이 우뚝하라 ‘

일자봉 정상은 KBS중계소와 군부대가 있어 정상을 밟을 수 없어 서운했으나 정상에서 약간 아랫부분으로 난 길을 따라 월자봉으로 향한다.

 

 

이 지역은 영양군에서 산림자원보존을 목적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금줄과 푯말이 산행객들의 무단출입을 막고 있다. 갈참나무 숲으로 우거진 나무 밑은 산나물들이 서식하기에 적당하게 보인다. 얼마쯤 가니 걸을 때 땅속에서 쿵쿵 소리가 난다고 하여 쿵쿵목이란 지명을 가진 곳을 지나 많은 꽃들의 환송을 받으며 일월산 표지석(1,219m)에 도달한다. 후미에 있던 일행들이 지름길인 월자봉으로 난 길로 와서 먼저 도착해 있다. 이곳까지는 도로가가 개설되어 있어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산나물축제에 참가한 많은 차량들이 곳곳에 있으며 간혹 정장차림의 사람도 보인다.

예전에는, 일월산은 영양 사람들에게 춘궁기에는 갖가지 산나물과 산삼. 당귀. 복령 등 약초 등으로 먹 거리를 주었고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또는 은혜스러운 산으로 받들어져 왔던 곳이다.

이 도로의 일부는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목적으로 광물자원을 채취하여 제련소로 옮기기 위한 도로로 1960년대에는 영양군일대의 산림벌채를 위한 도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달이 가장 일찍 비췬다는 월자봉은 음기가 강하여 무속인들이 즐겨 찾는다고 하며 황씨부인당에 얽힌 설화를 보면

설화1,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황씨 성을 가진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워낙 인물이 고와 마을의 두 젊은이가 서로 탐내어 결혼하고 싶어 했다. 황씨 처녀는 두 총각 둥 한 총각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혼 첫날밤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新房) 문 앞에서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신방(新房) 문(門)에 칼날 그림자가 어른 거렸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신랑은 앞마당의 대나무 그림자를 칼 그림자로 잘못 알고 처녀를 빼앗긴 연적(戀敵)이 앙심을 품고 자신을 죽이려고 숨어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랑은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멀리 달아나버렸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족두리와 원삼도 벗지 못한 채 조바심을 내며 신랑을 기다리다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처녀의 시신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삭을 줄을 몰랐다. 살아 있었을 때처럼 앉음새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돌부처처럼 앉아 언제나 신방을 지키는 듯했다. 한편 멀리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다른 처녀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사이에는 아이가 생겨도 낳기만 하면 이내 죽곤 했다. 답답한 마음에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바로 황씨 규수의 억울한 원혼 때문이라고 했다. 뒤늦게나마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친 신랑은 지금의 일월산 부인당 자리에 시신을 옮기고 사당을 지어 혼령을 위로했고 그때서야 신부의 시신이 홀연히 삭아 없어졌다고 한다.‘

 

 

설화2.

‘조선 순조 때 시어머니의 학대를 못 이겨 며느리가 일월산에 올라가 자결하자 그의 넋을 기려 세운 당집이다. 황씨 부인의 넋이 동네를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려운 일만 생기면 이곳을 찾아가 기도를 올린다. 뿐만 아니라 당집 근처에는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물빛이 흐려진다는 영험한 샘이 하나 있어 황씨 부인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월자봉과 황씨 부인당에 얽힌 설화를 생각하면서 일월재로 향한다.

월자봉에서 일월재 구멍바위 동화재 비조암 추자봉을 거쳐 찰당골로 하산하는 코스는 7.5km로 일월산의 오른팔(백호) 역할을 한다.

월자봉에서 일월재로 가는 이정표를 누군가가 약간 돌려놔서 혼돈을 일으킨다. 다시 확인하여 월자봉 뒤편으로 난 길 따라 하산한다. 등산로에는 많은 산나물들이 유혹한다. 유혹에 못 이긴 회원들은 산나물과 씨름한다. 일월재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일월재에서 난 도로를 따라가면 봉화터널과 영양터널이 나온다고 산나물 축제에 참가한 산나물꾼님이 알려준다.

우리는 다시 1,011m인 동화재로 향해 오른다. 오르다보니 자연적으로 특이한 형상으로 난 구멍바위에서 증표를 남기고 다시 위로 오른다.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동화재를 지나 바위가 마치 나는 새와 같다하는 ‘비조암’에서 다시 숨고르기를 한 후 비조암과 함께 사진으로 남긴다.

 

 

반디회원들도 오늘의 산행은 조금 힘든 모양이다. 우선 날씨도 한여름같이 무더운데다가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갈증도 심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일월산은 거의 바위가 없는 흙산으로 걷기에는 매우 편안하여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등산로 따라 함께하는 풀밭들과 길바닥에는 갈잎들에 의해 폭신폭신했다. 하산 마지막 봉우리인 추자봉을 지나자 급경사가 이어진다. 가끔씩 보이던 금강송소나무들이 찰당골 2km 지점부터는 많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거의 다가와서는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금강송의 멋진 자태를 보면서 찰당골에 도착하니 저수지가 눈앞에 다가온다. 급한 마음에 시원한 저수지의 물에 몸을 적시고 싶었으나 먼저 온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버스에 몸을 싣고 40여분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달린다.

오늘의 뒤풀이는 이곳 영양출신인 회원께서 특별찬조를 한 덕에 삼겹살에 한 잔의 술을 곁들이니 산행의 피로가 사르르륵 녹아내리는 듯한다.